[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면접 과정에서의 기업 '갑질'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면접 일정을 제멋대로 바꾸고, 합격 취소에도 사과의 말 한 마디가 없다. 기업 앞에서 언제나 ‘을’이 되는 취준생은 부당한 대우에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 채용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기업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한국경제 DB)
# 취준생 A씨는 지난 상반기 한세실업 최종면접에 참석했다. 하지만 면접 당일, 회사에 도착해서야 면접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하고 서둘러 도착해 듣게 된 이야기에 허탈한 마음은 더욱 컸다. 미리 알았다면 굳이 오전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회사 측은 면접을 차주 월요일로 변경하고 지원자들을 돌려 보냈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최종면접을 진행하는 회장님의 몸이 당일 갑자기 안 좋아져 면접을 취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전 일찍이라도 유선상으로 일정 변경을 공지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회장님의) 개인 신상 문제를 외부에 밝히 수 없어서”라고 덧붙였다.
# 취준생 B씨는 최종 합격 결과를 받고 1주일 후, 돌연 채용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들뜬 마음으로 입사를 위한 서류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회사 측은 “합격자가 아니었는데 전산 오류로 잘못 통보됐다”고 알려왔다.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에 마음을 놓고, 다른 기업의 면접에도 불참했던 터라 B씨는 더욱 낙담했다.
# 지난해 한 금융사는 취준생에게 합격 문자와 불합격 문자를 동시에 보내 논란이 됐다. 취준생 C씨는 합격 문자를 받은 후 불합격 문자가 추가로 전송돼 인사팀에 부랴부랴 확인 전화를 걸었고, 유선상으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잠시 후 또 다시 합격 문자가 전달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가 또 한 번 불합격 소식을 확인했다.
C씨가 더욱 화가 난 것은 이러한 실수에 대해 회사 측은 사과 한 마디 없었다는 것이다. 해당 문자를 발송한 인사 담당자는 “그것이 그렇게 큰 실수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사과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박해 공지하는 면접 일정, 불합격 통보는 생략...취준생 울리는 면접 갑질
기업의 ‘면접 갑질’이 취준생을 울리고 있다. ‘회사 사정’이란 이유로 일방적으로 면접 일정을 변경하거나, 채용 결과를 번복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에는 2~3일에 한 번 꼴로 ‘채용 취소 연락을 받았다’는 글이 올라올 정도다. 구직난이 계속되면서 취준생들은 이러한 기업의 갑질에도 혹여나 채용에 불이익을 받을까 제대로 된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취준생에게 제대로 된 면접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알아서 준비하라’는 식의 입장을 고수하는 기업의 태도도 문제시 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면접이 임박해서야 일정을 공지한다. 보통은 인적성 전형 합격자 발표 후에야 당장 며칠 뒤 있는 면접 일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면접 전형이 진행되는지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취준생들은 면접 관련 안내 메일을 받고서야 부랴부랴 준비를 시작한다.
송진원 공인노무사 겸 베러유 취업컨설팅 대표는 “기업이 채용 일정이나 전형을 변경하고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미리 확인하고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당장 날짜가 임박해 알려주니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 박람회에서 현장 면접을 보고 있는 구직자.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한국경제 DB)
실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상반기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신입직 구직자 589명을 대상으로 ‘스스로가 생각하는 취업 실패 요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2.6%가 ‘기업 정보 등 취업을 위한 정보 부족’을 취업 실패의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중견·중소기업 중에는 입사 지원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다음 날 면접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하기도 한다. 지원자의 일정이나 사정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불합격 통보를 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 합격자 발표일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탈락자들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라고 생각하고 마냥 연락을 기다리다가 뒤늦게 실망하기도 한다.
면접 전형 후 3주 이상이 지나서야 합격 발표를 하는 등 합격 여부를 너무 늦게 알려줘 학생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합격 여부를 알아야 계절학기, 인턴 등 이후 일정을 결정할 수 있는데, 언제 날지 모르는 합격 발표를 불안한 마음으로 마냥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채용 시즌에는 인사팀의 업무가 굉장히 과중하다. 때문에 합격자 발표 등의 채용 단계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취준생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채용 시즌에는 기업에서 채용 TF를 만들어 단계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인신공격 수준의 압박면접, ‘취준생 보호법’ 필요해
‘압박 면접’이라는 명분으로 면접자에게 인신공격 수준의 막말을 하는 사례도 많다. ‘학점이 낮은데 공부는 안하고 뭐 했냐’, ‘그 나이 되도록 취업 안하고 뭐 했냐’, ‘성적이 낮은데 일은 제대로 할 수 있겠냐’ 등의 질문을 ‘대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의도’라고 포장해 던진다. 여성에게는 ‘전에 일한 여직원이 생리통이 심했는데, 자네도 생리통이 심하냐’, ‘남자친구와 주말에 뭐하냐’ 등 업무와 전혀 무관한 질문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구직자의 74.1%가 면접관의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직자들이 경험한 갑질 중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한 질문’이 17.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인맥, 집안환경, 경제여건 등에 관련된 ‘도를 넘는 사적인 질문(14.6%)’, ‘무관심, 무성의한 태도, 비웃음 등 무시하는 태도(12.8%)’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중 48.8%는 ‘혹시라도 떨어질까 불쾌한 마음을 숨기고 면접에 응했다’고 답했다. 싫은 내색을 할 경우 합격 여부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기업의 갑질을 막을 방법이 없다. 법적으로 제지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손해가 발생해야하는데, 취준생 입장에서는 이러한 실질적 손해를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취준생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고, 합격과 함께 ‘취준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나게 된다”라며 “계속해서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집단이라 연대가 어려워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나서 ‘취준생 보호법’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동원 커리어탑팀 대표는 “취업준비생에 대한 보호 정책 중 하나는 채용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이라며 “모든 사람에게 정보가 고르게 전달되야만 공정 경쟁이 가능하다. 나라의 혜택을 받는 대기업의 경우에는 더욱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해 사회의 선순환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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