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스팩태클’ 신입사원 윤상훈 씨...사비 털어 ‘직장인’ 주제 전시회

입력 2017-11-29 11:32   수정 2017-11-30 09:28




윤상훈

1990년생

2017년 1월 롯데하이마트 경남지사 입사

[캠퍼스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롯데하이마트 신입사원 윤상훈(28) 씨는 20일 서울 통의동 한 갤러리에 자신의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근무하는 경남지사는 창원에 있다. 부산 토박이인 그는 이 일주일의 전시회를 위해 여름휴가를 아껴뒀다고 했다. 시간 뿐 아니다. 전시관 임대료부터 지하철 와이드 광고에 개인 돈 400만원을 털었다. 25일에는 ‘작가와의 만남’을 열고 직접 팬들도 만났다. 전시 방문자 당 1000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회사에서 윤 씨의 업무는 지역 지사에서 판매점을 관리하고 마케팅이나 판촉활동, 비용을 처리하는 일이다. 대학 때도 경영학을 전공했다. 미술관련 적성이 있는 것도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대신 이번 전시회 주제인 ‘입사 1년차 돈키호테’가 중요한 단서가 될 터.

“돈키호테를 이상하게 보는 건 그의 행동이나 생각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서예요. 불필요하다는 거죠. 하지만 돈키호테는 주인공으로서 소설을 이끌고 지금껏 전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그게 뭐든,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고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줬기 때문이에요.”



1년차 괴짜 신입사원, 회사생활 노고담은 전시회를 열다 




전시회는 크게 ‘희·혼·몫·참·외·정·입·틈·견·및’ 10개 글자를 줄기로 한다. 글자 당 약 1평 남짓의 공간을 할애해 윤 씨의 감정을 남아냈다. 예를 들어, ‘견(見)’에는 네 개의 거울이 모여 있는데 거울 앞에 서면 얼굴 이목구비만 보이지 않는다. 대신 뒤편으로 눈이 달린 가면들이 비치는데 꼭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섬짓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나에게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뒤의 시선들은 점점 작아지죠.”

특히 윤 씨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는 ‘참’이다. 이번 전시의 본질이자 지난 1년간 직장생활의 숨은 고생을 녹인 글자다. ‘참’ 코너에는 이번 전시 준비과정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직장생활의 8할은 ‘물밑 작업’이라고 하는 티 안 나는 일들이에요. 엑셀 파일,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찾아본 수많은 자료들처럼 보고서에 실리지는 않지만 기반이 되는 것들이 부지기수죠. 이런 직장인의 본질이자 애환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전시회 정중앙에 자리한 ‘희(喜)’에는 변기와 꽃들이 놓여 있다. 화장실은 모든 사람 

특히 직장인이 이곳에서 가장 해방의 기쁨을 느끼는 곳이라고 그는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뒤로 ‘참에 놓아둔 쓰레기들이 보인다. 

이들 10개 글자 아우르는 전체 콘셉트는 ‘일상에서 만나는 재료를 활용해 일상의 틀을 깨는’ 것이다. 이를테면 ‘회사원은 회사만 다니고 예술가는 예술만 하는’ 한계를 뛰어넘자는 의미다.  

그는 지난 몇 년간 기업 CEO들이 강조해온 ‘인문학 열풍’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짐작했다. 인문학은 당장에 티는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번뜩이는 영감을 가져다준다는 것. 그에게 이번 전시도 그랬다. 

“전시를 갑자기 준비한 건 아니에요. 늘 사소한 것에서 영감을 받고 그때의 감정을 기록해뒀는데 이런 행동들이 예술적 근육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회사 동료들의 ‘놀랍다’는 반응 역시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들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 짜릿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위사람 대부분 취업해 돈을 모으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걸 정상이라고 여겨요. 그래서 제 행동도 어색하고 불편해하죠. 차라리 그 시간에 적금을 부으라고도 쓴 소리를 하고요. 제가 직접 이런 고정관념을 깰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열혈청년’의 스펙터클 청춘스토리




윤 씨는 자신의 성격을 ‘충동적이지만 충동적이어야 할 때 충동적’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합당하다고 생각할 때, 이른바 ‘꽂혔을 때’는 앞뒤를 안 가리고 추진한다. 

군대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도 출원했다. 일명 ‘미션거래’라는 아이디어로 고객의 소비 트렌드를 필요로 하는 판매자와 조금의 수고를 들여서라도 할인을 원하는 소비자를 연결하는 것이다. 예컨대, 구매자가 주변에 관련 설문을 10장 돌리면 10%를 할인해준다. 역시 ‘군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더욱 실력을 발휘하고 돋보이기 위한 돌파구였다. ‘군인이 특허출원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전시장 입구 ‘입(立)’에 놓여 있는 그의 노력의 흔적들.

복학해서는 여행을 떠났다. 역시나 남과 똑같은 여행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기왕 멀리 떠나는 김에 전국 각지의 유명 명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군대 내무반에서 TV로만 보던 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름하야 ‘열혈청년 윤상훈의 청춘들의 멘토를 찾아서 떠나는 전국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단 기획안을 여러 곳에 제출했다. 그중 SK ‘드림캠페인’으로부터 같이 해보자는 회신이 왔다. 그는 마침내 SK로부터 차량과 비용을 지원받고 여정을 시작했다.

첫 행선지는 윤부근(현 삼성전자 부회장)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었다. 윤 사장이 삼성의 청년을 위한 행사 ‘열정락서’에 연사로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무작정 행사장을 찾았다. 마침내 특강이 끝나고 문답 시간. 그는 손을 번쩍 들고 “사장님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라며 외쳤다. 돌아온 답은 OK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회신은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급기야 수원 사업장을 직접 찾아갔다. 역시나 입구에서부터 제지를 당한 그는 보안요원을 통해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윤 사장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윤부근 부회장과의 인터뷰 후 남겨온 사인과 카메라.


“사장님이 ‘소명의식을 가지라’고 하신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껏 제가 해오던 괴짜 같은 일들은 다 제 소명의식에서 비록된 거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거요.” 

대학 3학년이던 25세, 이번에는 파스타 장사에 뛰어들었다. 모아 둔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월급을 탈탈 털어 2000여만 원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가게 위치가 학교 앞이었던 터라 방학이 되자 손님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임대료며 직원 월급을 챙겨줘야 했던 그는 영화관 진드기 제거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분식점, 빙수가게, 전시장을 뛰어다니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그동안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제 이뤄오면서 스스로에게 취해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이 실패경험을 발판삼아 때로는 열정이 아닌 냉정도 필요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죠.”





그리고 이 스펙터클한 그의 젊은 시절은 롯데그룹의 이색 신입채용전형인 ‘스펙태클’에 꼭 맞아들었다. 그는 서류심사에서 자격증, 토익성적 등 정량적 점수 없이 오직 자기소개 영상과 제안서로 승부하는 이 전형의 더할 나위 없는 주인공이었다. 

면접 때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무장했다. ‘하이마트의 가장 큰 경쟁자’를 묻는 질문에 ‘카카오’라는 의외의 답을 던졌다. 당시 하이마트가 홈케어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었는데 하이마트와 카카오가 각각 뛰어난 매장 접근성과 온라인이라는 비슷한 강점으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였다. 모두 그동안 발로 뛰어 만든 경험과 감각에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그의 발표는 면접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아직 입사 1년이 안 된 신입사원으로 지금은 무엇보다 회사에 집중하고 싶어요. 이번 전시회도 회사 생활 중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꾸린 거고요. 또 전시회 경험과 제 평생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파이팅 넘치는 신입사원이 되고 싶습니다.”

tuxi0123@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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