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포기하고 군 입대… 자비로 독립운동가 앱까지 만든 이유는?

입력 2017-12-13 17:38   수정 2017-12-14 10:14




△ (사진 = 김기남 기자)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서울 독립문역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정상규(32) 씨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사진 촬영 허가를 위해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이 소개를 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관계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분이 독립운동가 앱을 자비로 만든다고요? 도대체 왜요?” 정상규 씨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거다. 

정 씨는 이력이 독특하다. 미국 오리건대에서 수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예일대 대학원에 합격하고, 몇 년 후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던 때 한국으로 돌아와 공군 학사장교로 임관했다. 군 복무 중 독립운동가 앱을 개발했고, 전역 후에는 관련 책을 출간하는 등 독립운동가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독립운동가 앱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요. 3년 전 개발 후부터 지금까지 광고 한 번 실은 적이 없죠. 독립운동가 팔아 돈 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못하겠더라고요. 현재 앱을 통해 약 270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3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고, ‘자녀 교육을 위해 책으로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지난 7월에는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를 출간했어요.”



△ (사진 = 김기남 기자)

미국에서 수학 전공하던 유학생, 한국으로 와 독립운동가 앱 만들다

정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낯선 미국 땅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내 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애국심’이란 것이 문득문득 그를 자극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뛰어난 한국 인재들이 졸업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라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기특한 생각은 기본이고,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브레인 파워를 보여주겠다는 굳은 의지까지 생겼다. 

수학, 과학 동아리인 ‘자연과학협회’를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한국 학생들이 외국인 친구들에게 학습 재능기부를 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뜻은 통했다. 학교에서는 동양인이 비영리의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을 높이 평가해 정 씨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면 이렇게 무시당하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실력으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원에 진학해 보다 깊이 있는 지식을 쌓을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예일대 대학원 합격 통지까지 받았던 때, 한국에서 연락이 왔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였어요.” 

정 씨는 부랴부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버지 몸 상태가 회복되면 다시 돌아와 공부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에 그는 말을 잃었다. 병마와 싸우느라 그새 몸무게가 30kg이나 줄어있었다. ‘나만 생각하느라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미국 생활을 포기하고 부모님 곁에 남기로 했다. 그러려면 군대 문제 해결이 먼저였다. 정 씨는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출퇴근이 가능한 장교 입대를 선택했다. 



△ 독립운동가 앱 (사진 = 김기남 기자)

영주권 포기하고 입대, 군 생활이 인생의 터닝포인트

“국방부에서는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 입대를 선택했다며 국방미담 사례자로 소개했어요. 얼떨결에 인터뷰까지 했고 기사도 나왔는데 근무지가 38선 최전방으로 배치됐더라고요.(웃음) 강원에서 1년 7개월 근무 후 무릎인대 파열로 수원으로 근무지를 옮겼어요. 수원에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가 앱을 개발했고요. 군 생활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군 생활을 하며 그는 유독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나 나올 법한 명예로운 군인이 웬일인지 그의 주변에는 가득했다. 그중에는 의열단의 후손도, 김구 선생의 증손자도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던 역사 속 사건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동안 생각한 적 없던 역사의식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그날이 유관순 열사 서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 대한민국 현역 장교로서 그걸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역사학과 교수도 아니고 어떻게 기억하나’하는 마음도 들었죠. 독립운동가 서거일을 알려주는 앱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매일 아침 ‘오늘은 OOO 독립운동가 서거일입니다’라는 알람이 오면 평범했던 하루에 의미부여가 되고 더 열심히 살아갈 힘이 될 수 있잖아요.” 

정 씨는 바로 움직였다. 앱 개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독학으로 앱 만들기에 돌입했다. 자료를 수집하고,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총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자료 수집 과정이었다. 

그는 먼저 교과서, 한국사 기출문제, 공무원 시험 문제 등을 수집해 어떤 독립운동가가 등장하는지 확인했다. 10년치를 정리했는데 50명이 넘지 않았다. 2만 명의 독립운동가 중 고작 50명만이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정 씨는 ‘혹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람 중 대단한 업적을 가진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숨겨진 역사 속 진실은 없을까’하는 의구심을 품고 국가보훈처를 통해 독립운동가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자료 확인이 정말 어려웠어요. 한자어 표기가 너무 많았고, 당시 독립운동가 자료를 정리하셨던 편집자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안계셨죠. 2만 명을 다 알리는 것은 무리가 있었고, 출생, 서거일이 정확하게 기록된 분들로 범위를 좁혔죠. 그렇게 취합한 게 200여명이에요. 정말 적은 숫자죠. 이유를 찾다보니 2만 명의 독립운동가 중 대다수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었더라고요. 신분이 천한 사람도 많았죠. 또 일부는 당시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자료가 일괄 삭제되기도 했고요.” 

취합한 200여명의 자료는 정 씨가 한자어를 손수 번역하고, 읽기 쉬운 말로 의역했다. 독립운동가 앱에 접속하면 이들의 사진과 활동 내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보훈GPS’ 기능도 추가했다. 자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주변의 독립기념관, 생가, 공원, 동상 등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이다. 



△ (사진 = 김기남 기자)

취업 포기하고 독립운동가 알리기에 매진 

지난해 군대 전역 후 정 씨는 앱 운영과 동시에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앱 사용자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책으로 출간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2010년 유학 생활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던 터라 책 쓰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책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장을 잡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는데 주변에 있는 대학생들이 하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한국인이라는 게 창피하다’, ‘이민가고 싶다’ 등의 이야기였죠. 순간 화가 났어요. 어떻게 이룬 독립인데 그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3개월 간 책 준비를 하고, 검교정 작업만 4개월이 걸렸어요. 주변에서는 ‘취업 준비하기에도 부족할 시간에 뭐 하는 거냐’며 이해하지 못했지만요.” 

정 씨는 자신의 신념대로 책을 출간했고, 독립운동가 알리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최근에는 방치된 독립운동가 묘소 4500개에 안내판을 설치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유한양행이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의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을 위해 재능기부로 역사 수업을 진행할 계획도 있다. 

“요즘은 애국자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요. 여기에 올바른 역사관까지 갖춘다면 더욱 당당한 대한민국사람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 많은 청년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자긍심을 갖는다면 좋겠어요.”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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