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바로보기] 헤어지자는 말에 ‘염산 부어줄까’··· 사각지대에 놓인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

입력 2018-05-18 11:09   수정 2018-05-21 11:41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류의주 대학생 기자] 가끔 폭력은 사랑이라는 탈을 쓰고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연애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남기고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성인 여성의 60%가 당한다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통해 그 실상을 확인했다.  



※ 해당 내용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진술에 따라 구성한 가상 일기로, 시기와 발생순서는 사실과 무관함.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원하지도 않던 꽃을 사오느라 오빠가 약속 시간에 30분이나 늦었다. 전에도 이런 식으로 늦은 적이 있는데, 오늘만큼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탐탁지 않은 내 표정을 읽은 오빠가 갑자기 나의 뺨을 때렸다. 순간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그는 눈물 흘리는 나의 모습을 보자 태도를 바꿨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나를 달랬다. 그래, 순간의 실수일거야.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야.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오빠는 술을 마시면 변한다. 화가 나면 소주병을 바닥에 던지거나 벽에 던져 깨뜨린다. 그나마 약을 먹고 나아진 거라는데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며 태연히 말한다. 무서워서 말은 못했지만, 나에게도 그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설마 나에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지? 오늘은 오빠가 내 핸드폰을 검사했다. 고기를 굽다 말고 대뜸 휴대폰을 가져가 문자 내역을 확인했다. 동아리 회장 선배와 왜 문자를 했냐고 물어봤다. 동아리 일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전화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얼굴보고 얘기하면 나를 때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근길 오빠를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를 쫓아왔다. “네 얼굴에 염산 부어줄까? 내가 못 부을 거 같아?”라는 오빠의 말이 너무 무서웠다. 경찰에 신고를 해봤지만 ‘남자친구’라고 말하니 나를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그날 밤, 마지못해 오빠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   

 

2017년 6월 2일 금요일

새벽 2시 30분. 잔뜩 술에 취한 오빠가 갑자기 찾아와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바뀐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옆집 언니와 경비 아저씨가 오빠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오빠는 새벽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수치스럽고 창피하다고 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오빠에게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인터뷰 중 피해자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의 안일한 태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단순한 연인간의 다툼으로 인식해 출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는 “용기 내 주변 사람에게 본인의 상황을 고백했지만 ‘네가 그러니까 그런 애를 만나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초반에는 이러한 반응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를 수긍하고 폭력이 일어난 원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인정해버렸다”고 말했다. 본인의 아픔을 치유 받지 못하고 정신적 보상을 받기는커녕,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자기 자신한테 둠으로써 극심한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을 고백했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여자가 잘못했겠지’ 등의 인식 타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 복지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 여러 부처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피해자 지원 체계가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을 분리된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피해 여성에게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성남여성전화는 데이트 폭력에 대해 “피해자는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아야”하며 “즉각적인 신고가 어려운 상태에 처해있다면 폭력을 당한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록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데이트 폭력과 같은 여성 폭력 신고 및 상담은 성폭력 상담소, 해바라기 상담센터, 1366(여성긴급전화) 등을 통해 처리될 수 있다. 또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사이트 (https://www.stop.or.kr) 에서는 6월 15일까지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한다.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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