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청춘만찬]
[PROFILE]
이양구 동성제약 대표이사 사장
2001~ 동성제약 대표이사 사장
동성제약 부사장
포쉬에 대표이사
연세대학교 법학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정로환’, ‘세븐에이트’ 등의 국민 브랜드로 친숙한 동성제약은 올해로 창립 61주년을 맞은 탄탄한 기업이다. 고 이선규 회장이 1957년 창업했고, 2001년부터 이양구 대표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경영을 맡고 있다. 특히 이양구 대표 취임 후 동성제약은 기존의 의약품과 염모제, 화장품 등에서 한발 나아가 건강기능식품,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사업군을 확장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드럭스토어를 중심으로 출시된 셀프 헤어스타일링 브랜드 ‘이지엔’이 1020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젊은 기업’으로의 이미지 변신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양구(57) 대표는 ‘행동파 CEO’로 소문이 자자하다.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하거나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등 집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현장에서 땀 흘리는 시간이 더 많다. 스스로가 “나는 ‘과장형 사장’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 대표가 발로 뛰는 CEO가 된 데는 입사 초기의 현장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이 대표는 동성제약 입사 직후부터 공장에서 근무하며 현장 업무를 파악했고, 생산부터 포장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다. 책상에 앉아 경영 이론을 공부하는 대신 공장에서 제품 생산을 하며 실무 지식을 쌓았다.
△ 동성제약 제품을 소개하는 이양구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한 이력 등이 눈에 띈다.
“1980년 7·30 교육 조치로 대학별 본고사가 폐지되기 전, 마지막으로 본고사를 본 세대다. 당시에는 대학 입학시험을 두 번 치렀다. 예비고사를 통과하고 본고사를 치러 대학에 입학하는 방식이었다. 본고사를 치르고 목표로 하던 연세대 정법대학에 입학했다. 정법계열로 입학을 하고 전공은 2학년 때 정하는 방식이었다. 신문방송학과, 행정학과, 정치외교학과 등 다양한 학과가 있었지만 나는 법학과를 선택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까지 진학한 이유는 무엇인가.
“본고사 출신이다 보니 고등학교 때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다. 아마 지금의 고3 수험생만큼이나 힘들게 공부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대학에 가서는 공부를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특히 때가 때이니만큼 학교에서 데모를 하는 일도 많았고 휴교를 했던 기간도 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학년 때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강의실보다 당구장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 당구를 쳤는데, 2학년이 끝날 즈음 되니 250점이 나왔다. 그러다가 졸업할 때가 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사법시험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대학원 입학을 하며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4~5년 정도 계속해서 사법시험에 응시했지만 1차는 붙어도 2차 합격까지는 어려웠다.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회사(동성제약)에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경영자인 아버지가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니 ‘회사에 들어가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시를 포기하고 회사 입사를 선택했다.”
-처음 근무지는 어디였나.
“당시 동성제약의 공장이 있던 아산에서 근무를 했다. 하지만 여태 사법시험 공부만 해왔는데 공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나. 특별한 직무를 준 것도 아니고 그냥 책상 하나만 놔준 상태였다. 남들이라면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 시간만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았다. 공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같이 생산 작업에 참여했다. 제조도 하고 제품 포장도 하고 기계 정비도 도왔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나.
“몸을 써서 일한 적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익히는 일이 흥미로웠다. 제품에 대한 지식도 빠르게 늘고 의약품 지식도 쌓이고 공장이 돌아가는 흐름도 한눈에 보였다. 자연스레 일에 대한 열정도 늘었다. 나중에는 내가 포장작업에 들어가면 평소보다 1.5배 많은 양의 작업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 이양구 대표가 동성제약의 역사관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서범세 기자)
-현장 경험이 이후 회사 경영에도 도움이 됐나.
“큰 도움이 됐다. 공장에서 지내다 보니 제품에 점차 애착이 생기고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라 사람들을 귀찮게 하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것은 어떤 원료냐’, ‘무슨 역할을 하냐’ 등 연구원부터 생산 직원까지 눈만 마주치면 질문을 했다. 내가 하도 질문을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피해 다닐 정도였다. 그렇게 제조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일하다 보니 제품에 대한 지식이 쌓였고, 지금 회사 경영을 하는데 기반이 됐다. 나는 지금도 우리 공장에 어떤 기계들이 있고,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모두 알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현장 작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천안 공장이 처음으로 자동화를 도입했다. 기존의 방식에서는 24명의 직원이 하루 1만 5000개의 제품을 생산했는데, 자동화를 도입하니 8명이 2만 5000개 생산이 가능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공장 자동화의 효율성을 확인했고, 그에 따른 장단점도 알 수 있었다. 직접 현업에서 뛰며 겪는 시행착오와 업무 지식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배우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요즘 신입사원은 대학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고 생각하고 입사한다. 하지만 대학 공부와 현업에서의 일은 완전히 다르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온 나도 실제 업무를 하는데 필요한 지식은 처음부터 새로 익혔다.”
-책상 경영보다 발로 뛰며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제조업 출신이라 제품에 대한 애착이 많다. 직접 제품 개발에도 참여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내가 제일 바쁘다. ‘과장형 사장’이다. 이것저것 참견을 안 하는 부분이 없다. 직원들은 조금 힘들 수 도 있다.”
△ 집무실에서 만난 이양구 대표. 뒤로 부친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인다. (사진=서범세 기자)
-2세 경영자로의 고충이 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경영자로서 이견이 많아 종종 부딪히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의견이 다르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편이었는데 점차 경영자로서의 철학이 생기며 다투는 일이 생겼다. 특히 인사 문제와 관련해 아버지와 뜻이 다를 때가 있었다. 또한 ‘잘 되면 1세 경영자 덕, 안되면 2세 경영자 탓’을 하는 분위기도 어려움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2세 경영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충일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힘들게 키운 회사를 나의 실수나 욕심으로 망치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하고 경계했다.”
-경영자로서 부친의 어떤 모습을 닮았나.
“아버지의 별명은 ‘바닷가재’였다. 바닷가재는 뭘 한 번 마음먹고 물었다 하면 끝까지 잡고 놓지 않는다. 아버지 역시 한 개의 아이템을 정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있었다. 그러다가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한순간에 바로 털어내고 새로 시작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한 가지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향이 있는데, 반면 바로 털어내는 재주는 없다. 대신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려는 의지가 있다. 회사에서 의료기기 사업을 전개하며 LED를 활용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중도 포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간의 과정과 노력이 아쉬워 LED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LED 조명 사업으로 전개하는 등의 시도를 하기도 했다.”
-동성제약에서 채용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인성이다. 사업이라는 것이 제품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인성이 올바른 사람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조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들이나 형제가 많은 직원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대체로 이런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예의가 바르고 양보도 잘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당부하는 것이 있나.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염색 봉사활동을 하는데 신입 직원들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편이다. 다른 것을 떠나 봉사 현장에서 다양한 부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타 부서 직원들과 협조가 잘되면 업무도 훨씬 효율적이다.”
-기업의 CEO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매년 신입직원 채용을 진행한다. 영업직 기준으로 봤을 때 10명을 채용하면 1년 후에는 3명이 남고, 3년 지나면 1명이 남는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회사에 대해 잘 알아보지 않고 일단 지원한 뒤, 입사하고 나서 생각과 다르다며 떠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에서 신입사원 퇴사율이 높다고 하더라. 기업이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이 좀 더 배우려는 의지를 키우길 바란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 익힌 것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사진=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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