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로움의 미학을 즐겨요” 아날로그에 빠진 20대들

입력 2018-11-27 10:31   수정 2018-11-27 16:53


[캠퍼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오현경 대학생 기자]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다. 급속도로 발전한 전자기기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한두 번의 클릭만으로 손쉽게 원하는 결과물을 내준다. 전문가들은 10년 내에 종이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날로그가 멸종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주춤했던 아날로그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조작법도 까다로운 ‘구식’ 아날로그가 이제는 다르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를 사용하면 기다림의 미학을 깨우친 감성적인 사람으로 비춰진다. 

디지털세대인 20대가 이러한 불편함에 열광한다는 건 더욱 의미가 깊다. 필름카메라, LP 등 아날로그에 푹 빠진 20대들을 만나 그 매력을 들어봤다.



△김민지 씨가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필름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마음 깊숙이 남겨지는 느낌이에요. 디지털 카메라와는 다르게 말이죠.” 필름카메라 사용 1년차 김민지(22)씨가 말했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진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작년에 필름카메라를 구매했다. 

구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촬영 한 후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였고, 두 번째는 ‘필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과 색감이 좋아서’였다.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초반에는 초점, 노출 조작법에 익숙지 않아 필름을 많이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찍힌 빛번짐 또한 필름 고유의 멋스러움으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필름 1롤에 24장으로 촬영 횟수를 제한한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김민지 씨가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디지털카메라는 연사로 찍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 고르면 된다. 따라서 1분 사이에 몇 십, 몇 백 장을 찍을 수 있지만 필름카메라는 그렇지 않다. 사진을 바로 삭제하고 수정할 수 없기에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며칠 후에 현상소로 받으러 가는 순간 또한 더 없이 설렌다는 김 씨.

필름카메라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카메라 어플리케이션 ‘구닥(Gudak)’도 인기를 끌었다. 구닥 앱은 12시간에 24장의 사진만 촬영할 수 있고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3일을 기다려야 한다. 일반 스마트폰 카메라, 타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에 비해 화질도 훨씬 뒤쳐진다. 

하지만 색다른 콘셉트와 아련한 감성을 자극하는 ‘구닥’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1.09달러를 지불하고 구닥 앱을 다운받았다. 특히 20대 여성의 구매율이 가장 높았다. ‘구닥’은 국내 유료 앱 인기순위에서 1위(2017년 10월 기준)를 차지했다. 필름카메라의 아날로그적 매력을 느끼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대폭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LP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제공=홍대 사운드카페 ‘소리’ LP바 인스타그램 


LP 앨범을 내는 인기 뮤지션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관련업계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CD, 디지털 음원으로만 곡을 유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모든 음원을 어디서나 무한 스트리밍 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LP의 수요는 최근 꾸준히 증가해 왔다. 

LP의 관심과 더불어 젊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LP바’다. 방대하게 쌓여있는 LP들을 구경하고, 신청곡을 종이에 적어 내며, 음악과 함께 술과 맛있는 음식을 곁들일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의 ‘ㄱ’ LP바를 자주 찾는다는 한세연(23)씨는 LP바를 자신의 ‘아지트’라고 표현했다. 턴테이블, 진공관 등 음향 기기들이 옛 감성을 물씬 풍기고 LP들은 한쪽 벽면을 칸칸이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LP가 주는 아늑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20대가 많이 붐비는 홍대거리에 여러 LP바들이 위치하고, 주요 고객층이 20대인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LP는 20대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기 힘든 ‘비싼 감성’이기 때문인 것 같다.

LP는 음원 스트리밍, CD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또한 LP를 재생시켜주는 회전반인 턴테이블이 없으면 음악을 들을 수 없으며 장비들은 꾸준하고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 씨는 “원하는 LP를 마음껏 수집하고 싶지만 가격대를 생각하면 학생 신분으로는 부담이 된다”며 “LP를 직접 만져보며 즐길 수 있는 LP바가 욕구를 충족시켜 줘 꾸준히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30~1990년 동안 음원시장을 독점했던 LP는 그만큼 풍부한 장르와 시대를 안고 있다. LP바를 사랑하는 20대는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블루스’에서 ‘락’으로, 또 ‘올드팝’으로 다양한 세대와의 교감을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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