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월급 30만원, 100만원 등 천차만별
-식대, 교통비 지급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근로자가 아닌 수습생이라는 인식 개선 시급
△사진=한국경제 DB(해당 기사와 무관)
[캠퍼스 잡앤조이=김지민 기자] "월급 130만원. 식대 없음. 밤 10시까지 근무해야 지급되는 택시비. 패션업계의 부당한 근무환경은 언제쯤 나아질까요?" 한 디자이너 브랜드에 근무하는 20대 청년의 한탄이다. 몇 년 전 열정페이로 국민의 공분을 산 적이 있는 패션업계는 아직도 근로자에 대한 대우가 나아지지 않은 모습이다. 대학교를 이제 갓 졸업한 20대 청년들은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며 열정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기업에서는 적은 임금에 과도한 업무로 그들의 열정을 악용하고 있는 실정. 이 같은 현실에 한숨만 푹푹 내쉬는 청년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펼치지도 못한 꿈을 접어야 할지 막막한 심정에 고민이 한가득이다. 패션업계의 부당한 대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열정페이: ‘열정’과 ‘급여(pay)’의 합성어.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월급을 지급하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신조어.
월급 30만원, 야근은 의무인 패션업계 인턴
패션업계 열정페이 문제는 2014년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한글 패션'으로 유명한 이상봉 디자이너가 최저시급도 안되는 적은 급여를 직원들에게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이상봉 디자인실의 급여는 견습 10만원, 인턴 30만원, 정직원 110만원으로 모두 야근수당을 포함한 급여였다. 심지어 성수기에는 의무야근을 시키고, 추가 급여는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한글, 조각보, 태극문양 등 한국적인 소재를 디자인 재료로 사용해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디자이너였기에 사람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듬해 1월 이상봉 디자이너는 모두 자신의 부족함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공식 사과를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려버린 후였기에 부정적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쉽게 벗을 수 없었다. 논란 이후 정부가 대대적으로 근로감독에 나서고 언론에서도 열정페이에 대한 문제를 다뤘지만,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과 디자이너 브랜드는 특히 여전히 열정페이 문화를 놓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6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외국계 중소기업 B사에 근무했던 김 모(28) 씨. 4년제 대학 졸업 후 정규직으로 입사한 그는 수당을 포함해 연봉 2600만원을 받았다. "생일에 3만원 상품권 지급, 여름휴가 정도는 기본으로 받았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로 인해 야근수당이 따로 없었고,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해야 택시비와 식대를 받았다"면서 "외부 미팅이나 시장조사를 나갈 때는 따로 교통비가 없었다. 매일 밥 먹듯이 하는 외근과 야근에 사실상 받는 월급은 150만원도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B사는 4년제 대졸 사원 연봉은 2600만원, 초대졸은 2400만원, 인턴은 월 160만원이었고, 아르바이트 시급은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에서 몇 백원 정도 더 주는 수준이었다.
새어나가는 교통비와 식비…배고픈 청년들
한 캐주얼 남성복 브랜드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 모(23) 씨. 대학교 3학년을 휴학하고 패션 회사에서 일을 경험해보고자 입사했다. 멋진 디자이너의 길을 꿈꾸며 들어왔지만, 지금은 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교통비는 출퇴근 시에만 드는 게 아니다. 디자인실 선배를 따라 일주일에 3번은 시장조사를 하러 나가는데,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교통비가 두 배로 나간다. 거기에 식비까지 빠지면 월급은 금세 없어진다"라면서 힘든 현실을 토로했다.
열정페이 문제에 대해 해당 브랜드 대표는 "선배의 업무를 돕고 원단 정리나 재고 조사 등 업무가 더 많다. 일을 배우는 부분이 더 많기에 아무래도 많은 급여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수준의 다른 브랜드 대표는 "선배의 업무를 돕고, 원단 정리나 재고 조사 등 본인이 할 수 있을 만한 업무는 하기에 그에 맞는 급여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적절한 급여를 준다는 기준도, 업무를 한다는 기준도 각자 달랐다. 두 브랜드에서 인턴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각 100만원(교통비, 식대 미포함), 180만원(교통비, 식대, 야근 시 택시비 포함) 정도. 최저임금이 안되는 수준이다. 대학생의 월 평균 생활비가 69만원(2017년 3월 대학생 496명을 대상으로 알바몬이 조사한 결과)인 것을 감안하면, 특히 월 급여 100만원은 청년들에게 생활비로도 부족한 수준이다.
△사진=한국경제 DB(해당 기사와 무관)
수습생과 근로자, 좁혀지지 않는 간극
반면,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최저임금 수준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연봉뿐만 아니라 복지도 괜찬은 편이다. 외국계 중견기업인 에프알엘코리아는 신입사원 연봉 3700만원, 정시 퇴근, 기업에서 6개월마다 성과만을 가지고 평가해 직무나 직급에 상관없이 승진 등 기회를 제공하는 등 근무 처우가 좋은 편이다. 국내 중견기업 한세엠케이는 신입 연봉 3000만원, 기업 계열사인 예스24 무료도서관 지급 등이다. 대기업 중 한 곳인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이하 코오롱 FnC)은 연봉 4000만원대 초반, 대졸 신입 공채 여성 비율 40~50% 유지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거나 직원 개개인의 발전을 돕는다. 코오롱FnC 인사팀 관계자는 "급여나 근무시간 운영에 있어서 이전부터 법적 기준을 명확하게 준수해왔고,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소규모 회사들이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것이니 패션업계 전체가 그렇다는 인식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저임금으로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려는 모습은 아쉽다. 최저임금 수준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교통비나 식대 지급은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협회 신정웅(47) 비상대책위원장은 "알바몬 사이트에 패션 대기업의 알바 모집 공고가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다.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저임금으로 구인할 생각으로 알바몬에 공고를 올린다. 합당한 임금으로 구인할 생각이면 잡코리아 사이트에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기준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저임금으로 고급인력을 구인하려는 상황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노무법인 다현의 김연수(30) 노무사도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근로자가 아닌 수습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어떤 기업은 인턴을 뽑을 때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근로자성(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근로자의 성질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제외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는 고용자를 회사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지 않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라는 명목으로 프리랜서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방법이다.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회사에서 정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다. 김연수 노무사는 "고정 연봉은 최저임금 이상이 되더라 하더라도 연장근로 수당이나 연차 수당을 미지급 하는 기업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패션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알리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신입사원,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업. 오래전부터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근로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하루빨리 모든 기업에 최소한의 근로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min503@hankyung.com
< 저작권자(c) 캠퍼스 잡앤조이,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