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가기가 죽기보다 싫어요" "상사 괴롭힘에 사표 써야 할까요”…‘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어떻게 판단할까

입력 2019-07-30 16:46   수정 2019-08-16 14:21




[캠퍼스 잡앤조이=김지민 기자] 종합미디어 A기획사에 다녔던 이현지(가명) 씨는 직장 상사인 윤필모(가명) 팀장의 매일 이어지는 폭언으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윤 팀장은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나쁜 날이면 부하 직원들에게 트집을 만들어 괴롭혔다. 하루는 이 씨에게 “쥐 잡아먹었냐, 주둥이 색깔이 그게 뭐냐”라며 직원들 앞에서 창피함을 주기도 했고, 회의 중엔 “이게 눈에 안 보이냐. 눈깔을 빼서 씻어줄까”, “말투가 그게 뭐냐.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이 씨는 스트레스에 잔병치레하기 일쑤였고 병원에 간다고 보고할 때마다 윤 팀장의 폭언은 더욱 심해졌다. 참다못한 이 씨는 이러한 상황을 사장님께 얘기하고 싶었으나 괜한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 겁이 났다. 회사에서는 윤 팀장을 능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하고 신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씨는 고민 끝에 법적 소송이 아닌 퇴사를 선택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세에서 64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73% 정도가 직장 내 괴롭힘, 왕따 등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에 2018년 12월 27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법안이 통과됐고, 7월 16일 근로기준법 제6장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에게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업무상 적정범위는 문제된 행위가 사회 통념에서 봤을 때 업무상 필요한 것이 아니었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돼도 행위 양상이 사회 통념상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면 인정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기준은 당사자와의 관계, 괴롭힘이 행해진 장소 및 상황, 일회적 혹은 지속적, 행위의 내용 및 정도 등 종합적으로 판단될 수 있다. 괴롭힘이 행해진 장소는 외근·출장지 등 업무수행이 이루어지는 공간, 회식이나 기업 행사 현장 등 사적인 공간, 사내 메신저·SNS 등 온라인상의 공간이다. 괴롭힘 여부의 판단에서 중요한 점은 피해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 환경의 악화라는 결과가 발생한 부분이 인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해당 내용과 시간을 기록하고, 녹음이나 동료 증언과 같은 증거를 남겨 고용주에게 신고해야 한다. 고용주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후에는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괴롭힘 가해자에 대해서는 징계나 근무 장소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피해자 또는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줬다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피해 근로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처분을 한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담은 취업규칙을 제(개)정해 관할 노동지청으로 신고하지 않은 사업장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위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이 씨는 직장 내 구성원끼리 사적인 볼일을 보던 중이 아닌 업무 중이었고, 지속적인 폭언이 이뤄졌으므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병원계·금융계도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속출

직장 내 괴롭힘은 소규모 기업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병원계와 금융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병원계 사례는 2017년 일어난 한림대성심병원의 ‘장기자랑 갑질’ 사건이다. 재단 행사에 간호사를 동원해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해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는 이 사건은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따르면 신입 간호사들은 장기 자랑에 참여하기 위해 약 1달간 근무 외 저녁 연습까지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금융계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사례로 논란이 일고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 7월 25일부터 총 4차례 ‘자산관리(WM) 액티브 PT 대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이 대회는 영업 직원 대상으로 상품 소개 노하우를 공유하는 사내 프레젠테이션이다. 앞서 7월 17일 대신증권은 대회 참가 대상자 125명을 발표했는데, 영업점으로 발령받은 지 6개월도 안 된 직원이나 전략적 성과관리 대상자 등 저성과자로 낙인찍힌 직원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에 노동조합 측은 직원들을 망신 주기 위한 행사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대신증권 측은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한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사례와 판결

승진대상에서 누락돼 반발한 직원이 명예퇴직 권고대상자로 선정된 후 이에 항변하는 과정에서 괴롭힘을 당한 사건. 업무변경과 관련한 문제를 따지는 과정에서 폭행, 업무용 물품 및 ID를 회수, 직원들에게 전자우편 동시 발송 시 피해자를 제외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장 내에서의 따돌림, 차별적 대우를 함.

(서울행법 2000. 8. 14. 선고2000구34224 판결: 이로 인한 정신적 질환에 대한 산재 보상 인정)

가해자인 선배가 후배인 피해자에게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반복해 말한 사건. "술자리를 만들어라", "아직도 날짜를 못 잡았느냐" 등 반복적으로 술자리를 갖자는 발언을 하고 시말서, 사유서를 쓰게 한 행위.

(대전지방법원 2015. 8. 28. 선고, 2014고합207 판결: 강요미수죄 인정)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중 일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안과 관련 규정이 나와있다. 매뉴얼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기업 내에선 취업규칙 변경·사내 교육 등 진행



한림대성심병원은 법 시행 전인 3월에 취업규칙을 변경해 적용했다. 이어 지난 8일엔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 캠페인’ 선포식을 갖고 직원과 노동조합원이 병원 내 공동라운딩을 통해 캠페인 활동을 했다. 이날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을 위한 수칙을 제정하고 모니터 배경화면 등에 적용, 외래 및 병동에는 유인물을 배부했다. 병원 관계자는 “지난 갑질 논란 이후 직원끼리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으로도 매월 부서 선임직원과 노동조합원이 병원 내 공동라운딩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한미약품 등 기업에서는 법 개정 시기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사내 게시판을 통해 모두에게 법을 준수해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라 각 사내 사정에 맞게 취업규칙을 바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가이드 라인을 보면 괴롭힘 유형과 사건 발생 시 회사가 처리하는 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이를 참고해 취업규칙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또 한미약품 관계자는 “괴롭힘 방지법 시행에 맞춰 현재 전사 의견을 청취하고 취업규칙 변경 공지를 완료한 상태”라며 “사내 고충처리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임직원 간 소통 접점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 기업에서는 취업규칙에 근로개정법을 적용, 직원 교육과 홍보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관계자는 “제도 이름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직장 내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호존중과 예의를 지키고, 상대방의 인격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례

(O) 상사의 개인 심부름으로 인해 집에서도 일해야 하는 직원

상사가 본인의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을 직원에게 시키고 개인적인 외부강의를 위한 준비를 근무시간에 시켰다. 이로 인해 직원은 업무를 집으로 가져가서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상사라는 지위의 우위를 이용해 개인 심부름을 시켰다. 이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해당 직원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행위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O)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왕따 시키는 상무

새로 부임한 상무는 호동 씨의 업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하 직원들에게 호동 씨를 왕따 시키도록 지시하고, 이로 인해 직원들은 호동 씨를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회의에서도 배제했다.

상사라는 지위의 우위를 이용해 해당 직원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고, 정신적 고통을 줬기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

(X) 근무시간 외 업무를 지시하는 상사

광고대행사에 근무하는 승원 씨는 중요한 PT를 앞두고 근무시간 외에도 PT준비 제안서를 지시하는 팀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직속 관리자라는 직위의 우위를 이용했으나 실적 향상을 위해 지시하는 정도의 행위는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므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X) 교대 근무로 업무가 변경된 직원

상시주간업무를 하던 민주 씨는 회사 사정상 주야간 근무로 변경됐는데, 이로 인해 업무 강도가 강해져 힘들어하고 있다. 팀장에게 얘기했지만, 회사 사칙 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회사의 정당한 규정에 따라 근무형태가 변경된 것이므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다고 보기 어렵다.



min5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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