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잡앤조이=이도희 기자/김해인 대학생 기자] 규카츠는 소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겉에만 튀겨낸 음식으로 작은 화로에 한 조각씩 올려 속까지 익혀 먹는 음식이다. ‘귀찮게, 어차피 익혀 먹을 건데 처음부터 속까지 튀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익히는 정도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고 각자의 취향대로 익혀 먹을 수 있어 많이들 찾는다. 다만 고기를 익혀 먹는 화로가 작아 감질나게 먹어야 해서 느리고 답답하기도 하다. 이때는 고기가 익을 때까지 함께 식사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더 많은 얘기를 나누면 된다. 규카츠는 불편하지만 불편한 만큼 매력 있는 음식이다.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합시다
맛있음을 위해 견뎌야 하는 불편함이 있듯이 ‘규카츠’
엄마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정도로 나와 가깝다. 그런 엄마는 내게 가끔 아빠 욕을 실컷 늘어놓는다. 그럴 때마다 난 무조건 엄마 편을 들었다. 근데 웃기게도 나중엔 항상 “그래도 너한테는 아빠잖아. 너무 미워하지 마”라며 엄마는 아빠를 두둔한다. 한참 얘기를 들어주다가 도 허탈함을 느낀다. 매번 지겹도록 반복되는 패턴에 지쳐, ‘험담 들어주기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되는 그놈의 딸 타령. “무슨 딸이 그러냐? 내가 딸한테 이런 얘기를 하지 누구한테 해 그럼? 네가 제일 편하니까 그런 거지!” 그리고 이때 항상 빠지지 않고 같이 소환되는 남의 집 딸. “남의 집 딸은 엄마 얘기 다 잘 들어주고 그러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러는지 몰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 딸이 원망스러워진다. 도대체 어느 집 딸래미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다.
자매품으로 ‘남의 집 엄마’ 타령도 있다. 엄마는 한 번씩 내게 상처 주는 말들을 아무렇지 내뱉는다. 어느 날은 봄이 돼서 옷을 사고 싶다고 말했더니 다짜고짜 내 살들의 안부를 걱정한다. “그 다리로 치마 입으려고? 옷은 무슨 옷~살이나 먼저 빼”. 비슷한 문제로 여러 번 싸웠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아니면 누가 너한테 이렇게 말해주겠니.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남의 집 엄마도 다 그래”. 역시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 엄마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내가 상처받았음을 아무리 어필해봐도 부모와 자식 간에 상처받고 말고가 어딨냐는 엄마.
나는 남의 집 엄마와 사는 게 아니고 우리 엄마는 남의 집 딸과 사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계다. 편하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상처를 주기에도 편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장 깊은 상처를 만들어 낸다.
엄마와 딸이라 할지라도 영원한 내 편, 무조건적인 내 편을 장담할 수 없다. 존중과 배려에도 기브앤 테이크가 필요하다. ‘가족이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무마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서로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존중과 배려의 불편함까지도. 편한 사이일수록 우리는 더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내가 조금 불편할지라도 이런 노력이 더 건강하고 매력적인 관계를 만들어줄 것이다. 마치 불편함을 감수해야지 더 맛있는 규카츠처럼!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합시다
어색한 조합이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듯 ‘김피탕’
김피탕은 김치+피자 치즈+탕수육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음식이다. 지금은 꽤 대중화돼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치와 치즈, 그리고 탕수육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처음 본 사람들은 맛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달콤한 탕수육, 매콤 새콤한 김치, 고소한 치즈가 만나 완벽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어색한 조합을. 먹어보기도 전에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김피탕은 없었을 것이다. 아빠와 딸의 관계도 그렇다.
나는 점 위치까지 똑같을 정도로 아빠를 닮았지만, 아빠와 정말 안 친하다. 어렸을 때 찍은 앨범을 보면 아빠 품에 안겨 회전목마도 타기도 했고, 같이 스티커 사진도 찍기도 했었는데 너무 까마득한 기억이다. 그저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그때의 아빠는 자식밖에 모르는 자식 바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지금 우리는 많이 어색하다.
내가 7살 때 아빠는 주식 투자를 했고 우리 집은 빚더미에 앉았다. 빚을 갚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우리와 따로 살았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벌써 17년째다. 지금껏 한 달에 딱 한 번 용돈 줄 때 빼곤 아빠와 따로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빠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아빠는 지금 어디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미움보다 더 무섭다던 무관심이었다.
명절 때마다 아빠는 집에 우리를 보러 왔는데, 희한하게 엄마가 일을 나갈 때면 아빠도 비슷한 시간에 집을 나갔고, 엄마 들어오는 시간에 비슷하게 맞춰 따라 집에 들어왔다. 아빠는 그 시간 동안 마트도 가고 찜질방도 가고 피시방도 가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빠한테 역마살이 껴서 밖에 돌아다니시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은 엄마 없이 우리를 마주하는 게 어색해서 밖으로 나갔었던 거였다.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실수 때문에 자식들 앞에 당당하지 못한 아빠였다. 어렸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인제야 조금씩 보였다.
집에 계실 때에 가끔 나에게 같이 신발 사러 가자 거나 같이 국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했었는데 나는 모두 ‘NO’로 일관했다. 어색하고 불편하니까 그저 단둘이 있는 시간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아빠가 그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 당시엔 몰랐었다.
나는 아빠와 어울릴 수 없다며 단정 짓고 벽을 쌓아왔다.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왔다. 그래서 우리 사이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변화를 원한다면 무엇이라도 시도해봐야 한다. 집에서 같이 피자를 시켜 먹는다거나 같이 동네 산책이라도 하거나, 그마저도 어렵다면 먼저 메시지를 보내보자.
아빠와 딸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짜일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치와 피자 치즈, 탕수육이 어울릴지 아무도 몰랐었던 거처럼. 어색하고 색다른 것들이 모여 의외의 맛있는 맛을 내는 김피탕처럼 우리도 꽤 매력적인 조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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