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부동산을 20년째 운영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8월 14일, 대학들이 몰려있는 서울 신촌에서 만난 A부동산 대표는 “영업을 하면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자녀를 뒀다는 이 대표는 “요새 대학들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기존에 계약했던 방이 필요없어졌지만 월세를 그대로 지불하는 대학생들이 많다”며 “집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직접 연락하지 못하고 부동산에 요청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같은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입장에서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임대인에게 월세 감면이나 해약을 권고할 수도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2학기 수업을 대면강의로 잠정 결정했던 일부 대학들도 다시 비대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다시 ‘두집살림’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이른바 ‘임대차 3법’이 지난 달 31일 본격 시행된 후 전월세 가격 급증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어 학생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 부동산이 밀집해있는 서울 신촌의 골목. 사진=이도희 기자
“명문대 합격해도 집이 없어 난감해요”
“서울 집값이야 워낙 비싸니까 어느 정도 각오는 했는데 올라와서 실제 매물을 보니 말이 안나오더라고요.”
이날 A부동산에서도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 자녀와 어머니가 학교 근처 원룸을 구하고 있었다. 2학기에 학교가 대면 강의를 확대할 것을 대비해 미리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들 모녀는 기자가 대학가 전월세 시장을 취재한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다행히 올 상반기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저렴한 가격의 전세로 거주한 덕에 월세 부담이 없었는데 이번에 임대차 3법 통과로 지인이 집을 월세로 전환하고 임차인을 구하기로 하면서 새로 집을 알아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 임대차 3법 때문에 다른 집들도 월세로 전환하거나 가격을 올리면서 갈 곳이 없어졌네요.”
임대차 3법은 계약갱신청구권(임차인이 희망하는 경우 계약 갱신 1회 청구 가능), 전월세상한제(계약 갱신시 임대료 상한 5% 범위 내로 제한), 전월세신고제를 골자로 한다. 법의 취지는 임차인의 권리를 확대하는 것인데, 임대인들이 이를 피해 처음부터 가격을 올리거나 아예 전세를 월세나 매매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KB부동산 주간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8월 17일 기준 서울지역 전세수급지수는 직전 주 186.9보다 2.7p 오른 189.6을 기록했다. 2015년 10월 첫째 주 190.6 이래 최고 수치다. 전세가격도 60주 연속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에서도 17일 기준 전세가격 상승률이 직전 주 대비 0.12% 올랐다.
A부동산에서 만난 모녀는 또 “직접 와서 보니 ‘허위 매물’도 많더라”며 허탈해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은 집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최근 여러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이 생기면서 이들 정보를 보고 올라왔지만 실제와 다른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딸이 20학번으로 서울의 한 명문대에 합격해 기쁜 것은 잠깐, 올해 닥친 현실에 힘들기만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탄탄한 수요층이 있는 대학가는 정부의 전세자금대출 지원제도를 활용하기도 녹록치 않다. 일부 제도는 임대인에게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고 만약 대출을 받지 못할 경우 임차인이 계약을 파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임대인과 부동산중개인 모두 꺼리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대학생 주택 지원사업 추진해달라”
기존 집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2학기 대면강의를 준비했던 대학들이 다시 비대면으로 수업방식을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동산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서울 대학가에 월세 50만원, 관리비 3만원까지 원룸을 계약했는데 최근 집주인에게 계약 취소를 의뢰했다가 거절당했다. 역시 학교의 온라인 수업조치 때문이었지만 법적 권고사항은 아니기에 그는 결국 관리비라도 아끼자는 심정으로 남은 계약기간의 월세를 일시불로 지불하고 계약을 파기했다.
올 4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온라인 강의 연장으로 인해 대학교 원룸촌에 무의미한 월세를 지불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위한 ‘코로나 19 주택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닌다는 이 작성자는 “개강을 앞두고 올 2월 대학교 인근 원룸촌에서 방을 계약했는데 코로나19로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한데다 아르바이트는 물론 취업도 어려워 월세가 이전보다 더 큰 부담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례없는 ‘가혹한 봄’을 맞은 대학생을 위해 정부가 ‘코로나19 대학생 주택 지원 사업’을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2학기도 비대면… 임대료 삭감 요청도 어려워
대학생들의 집 찾기는 2학기 개강을 맞는 9월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정부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단계로 격상함에 대학들 역시 2학기 학사운영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교육부도 16일 서울·경기지역 대학에 비대면 수업을 권고했다.
한양대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서강대 등은 개강 후 일정 기간 전체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밖에 다른 대학들도 상황에 따라 비대면과 대면강의를 연동하거나 방식을 놓고 회의를 하는 등 비대면 수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보통 때와 달리 단기 임대를 알아보거나 임대료의 일정 부분을 제하는 방법 등을 찾고 있다. 하지만 집주인의 선의를 무조건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다. 게다가 집주인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이들 역시 집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은데 최근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으로 대출 규제가 심해지고 세금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월세의 상당 부분을 대출 이자를 막는 데 사용하는 임대인들은 세입자의 입장을 100% 수용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월세를 못 받고 있는 집주인도 있다. A부동산 대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올 4월 대학생인 세입자가 코로나19로 아르바이트가 끊기면서 당장 생활비가 없어 사정을 봐달라고 집주인에게 호소했다”며 “결국 보증금에서 제하기로 합의를 봤지만 집주인도 그렇고 지켜보는 중개인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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