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의 정치, 내 손 안의 '온라인 공론장'
-그들에겐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한경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백승훈 대학생 기자] 정치에 한창 관심이 생겨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는 대학생 A씨(23)는 요즘 시민들의 정치 참여 양상을 두고 "누구나 신문고 하나씩 가지고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굳이 바깥으로 나가 피켓을 들고 시위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정치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 (SNS)가 성장함에 따라 정치 참여의 문턱이 훨씬 낮아지면서, 온라인 정치가 시민 정치 활동의 새로운 표준 (뉴노멀)이 되고 있다는 주장도 부각되고 있다.
모든 이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하루 평균 31만 명이 방문하고 800여 건의 청원이 올라오는 곳. 청와대가 운영하는 '국민청원 게시판'은 지난 3년 간 약 1억 6천만 건의 누적 동의 수를 기록했다. '눈을 두 번 깜빡일 때마다 누군가 국민청원에 동의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홍보 영상의 첫 멘트가 절대 과장이 아닌 이유인 것이다.
그동안 '국민청원'은 순기능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 공론장으로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고 시민의 활발한 정치 참여를 독려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청와대가 국민청원 홍보 영상에서 공개한 통계 정보에 따르면 '정치 개혁' 분야로 구분된 청원들이 3년 간 받은 동의 수는 약 2천만 건으로, '인권과 성평등' 분야에 뒤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았다.
△n번방 가입자 신상공개 촉구 국민청원.
국민청원에서 시작된 이슈는 아니지만 국민청원이 '여론의 바로미터'로서 온전히 기능한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도 있었다. 올 초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N번방 사건'은 시민들의 사안에 대한 관심이 매우 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한 달 만에 약 270만 명의 동의를 받으며 국민청원 최다 동의 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관심에 부응하듯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N번방 방지법'은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는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사회 이슈를 파악하는 것이 익숙해졌다는 직장인 B씨(28)는 '접근성'과 '확장성'을 '국민청원이 성공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요인으로 손꼽았다. 그는 어릴 적 '다음 아고라 청원' 에도 몇 번 참여해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아고라'와 달리 '국민청원'이 갖는 강점 중 하나가 주변에 청원 동의 요청을 할 때 모두가 쓰는 카카오톡을 통해 쉽게 공유가 가능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과거 다음 아고라 청원 사진.
전문가들은 '국민청원의 성공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성장과 시민 의식의 성숙이 시너지를 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유우현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민청원'과 같은 온라인 공론장의 가치에 대해 "과거 정치권력과 레거시 미디어가 독점하던 의제 설정 기능을 시민의 손으로 되찾아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고 설명했다.
한편 유 교수는 온라인 공론장의 부작용을 경계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일부 정치인들이 온라인 공론장의 여론을 국민 전체의 목소리인 양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온라인 공론장의 의의가 퇴색되지 않기 위해선 선택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비슷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는 '확증편향' 현상을 경계하고 생산적 토론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활동이 곧 내 일상, 'SNS 해시태그 운동'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시민 정치 참여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9월 초,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의 개봉을 앞두고 인스타그램에는 '뮬란을 보이콧한다'는 의미의 해시태그들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뮬란 보이콧 해시태그 운동.
'뮬란 보이콧 운동'은 주연배우 유역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홍콩 시민운동을 탄압한 경찰을 지지한다는 발언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중국 내 소수민족인 위구르족 탄압에 연루된 중국 단체에 대한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디즈니는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을 묵인하고 동조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에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대학생 C 씨(23)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시민인 나도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C씨는 실제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정치인들을 규탄하기 위해 해시태그 운동뿐만 아니라 국민청원에도 여러 번 참여해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온라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정치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기대였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정치인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고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으니 올바른 정치를 펼치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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