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월 30만원 받고 24시간 항시 대기…벼랑 끝에 몰린 패션 어시스턴트

입력 2020-10-29 16:44   수정 2020-11-10 16:58


[한경잡앤조이=이진이 기자] <i>#비정상적으로 낮은 월급과 긴 노동시간, 높은 일의 강도에 스스로 노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해진 근무시간과 휴일이 없는 데다 4대 보험은커녕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아 수년을 일해도 퇴직금조차 받을 수 없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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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픽업해 간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실장이 행거를 엎은 일이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욕설과 언어폭력이 이어졌다. 욕설은 하루 한 번은 기본이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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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현장에서 스팀 다림질을 하고 있는데 실장이 “왜 빨리빨리 하지 않느냐”며 스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팀기를 집어던진 적이 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모욕적인 순간이었다.</i>

도제식 시스템이 남아 있는 패션업계에 인권침해가 만연한 가운데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이하 패션 어시)의 노동력 착취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타일리스트(실장)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온다. 

‘나 때도 그랬다’ 잘못된 관행 여전

패션 어시는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하면서 촬영 현장을 따라다녀야 하는 업무 특성상 24시간 항시 대기 상태다. 초과근무 수당은커녕 최저임금도 안되는 교통비 수준의 임금만 주어진다. 한 달에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90만원 가량 받는데 그마저도 밀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패션 어시 A씨는 “월급이 밀리는 건 기본이고 아픈데도 병원에 못 가게하고 계속 일을 시켰다”며 “어떤 날은 일이 없는 데도 출근을 시켜 2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일 힘든 거 알고 있지?” 면접 과정에서부터 노동착취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로 시작한다. 쉬는 날도 정해져 있지 않고 전화가 오면 자다가도 받아야 한다. B씨는 “실장이 새벽에 잠들기 때문에 그때까지 카톡에 답해야 한다”며 “업무가 끝나도 실장이 퇴근하라는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털어놨다.

C씨는 “지방 스케줄을 갔다 와서 새벽 1시에 도착했는데, 다음날 아침 9시 30분에 출근을 했다”며 “어떤 날은 밤샘 촬영을 하고 아침 6시에 일이 끝났는데, 그날 오후에 출근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패션 스타일리스트들은 프리랜서 형태의 개인사업자로 일하고 있으며, 패션 어시는 프리랜서인 스타일리스트에게 고용돼 도제식 구조 하에 노동 착취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인격모독이나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물건이 없어지기라도 하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물건값 수 백만원을 N 분의 1 하기도 한다.



패션 어시스턴트 94.4% 근로계약서 작성 안 해…고용부 근로감독 나선다

청년유니온이 7월 발표한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4%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4대 보험에 모두 가입돼 있는 경우는 5.2%에 불과했다. 월평균 임금은 97만2000원으로 하루 평균 근로시간 11.5시간, 월평균 휴일이 4.8일임을 감안했을 때 시급은 3989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48.0%는 식대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통신비(월평균 9만6100원)와 교통비(월평균 11만9900원)도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출퇴근 시 택시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33.3%로 조사됐다.  

이에 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년유니온 산하 패션 어시스턴트 노조는 9월 17일 패션 어시스턴트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사할 필요하다며 고용노동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다. 청년유니온이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한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서모 씨의 사업장을 비롯해 6곳이다. 

고용노동부는 10월 20일부터 한 달간 장시간·고강도 노동 착취 문제가 제기된 스타일리스트 사업장 6곳에 대한 수시 근로감독을 진행하기로 했다. 패션 어시스턴트들이 제기한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임금 미준수 등 근로기준법 위반을 집중 점검할 예정이다.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29일 “패션 어시들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경우가 많아 법상으로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며 “어떤 분은 고용부에 진정을 넣었는데 근로자가 아니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근로감독 결과가 잘 나와서 패션 어시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이번 일이 패션 어시가 노동권을 쟁취해내는 첫 단추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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