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의 역사를 마주하다 ‘[Re] Collect: 여성 작가 소장품전’

입력 2020-12-10 11:18   수정 2020-12-10 16:31


[한경잡앤조이=이도희 기자/이소현 대학생 기자] 미술사에서 ‘여성’이 작업의 주체로 등장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여성 미술가는 당대의 주류 남성 미술가와 조수 관계를 맺어 작품을 창작하는 등 간접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곤 했다. 

21세기에 이르러 페미니즘을 포함한 젠더 관련 논의에 불이 붙자, 예술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간 여성을 미술에서 소외시켜 온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벨기에의 왕립미술관 등 세계 각지의 미술관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춰 온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미술 활동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국내 예술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서울대 미술관, 여성 작가 작품전 개최

그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는 미술관 중 하나로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있었다. 이 미술관은 10월 28일부터 11월 29일까지 한 달간,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품들을 선별한 [Re] Collect: 여성 작가 소장품전을 개최해 동시대 국내 여성 작가들이 걸어온 궤적을 살폈다.



△ 서울대 미술관 내부.


2020년 현재 서울대 미술관에는 총 731점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중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118점에 달한다. 이번 전시의 핵심 키워드는 ‘재현’(再現)이다. 소장된 작품들을 ‘다시’ 관람객 앞에 내보임으로써 현대 사회에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젠더 담론과 결을 공유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작품전은 회화·조각·비주얼 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변을 넓히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영역을 짚는다. 이때 관람객은 국내 현대 미술의 한 축을 담당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연도별로 감상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의 쟁점과 호흡하며 새롭게 생동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는 회화·조각·영상 등 각 분야에서 선별한 70점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작품 속으로 ‘다시 한번’ 잠기다

대부분의 회화 작품은 추상 회화였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전시장의 벽면에 홀로 걸려 있는 홍정희 작가의 회화 작품 탈아(脫我, Off Self)였다. 제목 ‘탈아’는 한자 ‘벗을 탈’자와 ‘나 아’자를 합쳐 만든 단어다.



△ 홍정희 작가의 회화 작품 탈아’.

풀이하자면 제목은 자기 자신의 자아에서 이탈하는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에 걸맞게 캔버스의 화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초상화나 풍경화와 달리 뚜렷한 형태를 가지지 않은 채 물감의 향연으로만 채워져 있다. 특정한 사물을 그리지 않은 탓에, 관람객은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 상태로 빨강과 분홍, 파랑 등 강렬한 원색으로 가득한 화면을 계속 배회하게 된다. 작가는 자아가 이탈한 현상을 이렇게 시선이 계속해서 캔버스 위를 떠도는 상황으로 표현해, 추상 회화의 특징을 극대화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혼합 재료를 사용한 이색적인 작품도 있었다. 이민주 작가의 Turbulence-The Light for the New Birth-Reflection on the Air 연작은 광목에 한지와 먹, 금박을 얹어 만든 독특한 작품이다. 작가는 기존의 회화에 잘 쓰이지 않는 자료를 사용해 광활한 우주의 은하수와 행성이 보이는 유려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 이민주 작가의 Turbulence-The Light for the New Birth-Reflection on the Air 연작.

특히 중앙부의 그림은 생명체가 태어나는 최초의 순간을 화려한 금박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양한 사진 재료와 SNS 피드 캡처본을 이용한 콜라주 작품도 있었다. 최혜민 작가는 6시간 전_방금 전이라는 작품에서, 형체가 왜곡된 사람들의 표상을 담은 조각 사진들과 익명 처리된 SNS 게시물 캡쳐 사진을 통해 SNS에 잠식된 현대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전시는 한 달이라는, 짧은 듯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됐다.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관람객을 수용하기는 어려웠지만, 본 전시는 여성 작가들이 걸어온 길을 되짚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앞으로도 동시대 미술계의 동향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전시를 기획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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