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노믹스' 무거운 숙제 보따리…계사년 첫날부터 잠 설친 기업들

입력 2013-01-01 16:32   수정 2013-01-02 03:47

2013 재계 관전 포인트

일감 몰아주기 규제·정년 연장 해법찾기
"글로벌 불황인데…" 투자·채용 늘리기 고심




한 대기업 서울 본사에는 새해 첫날인 1일 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오후에 잠깐 신년 하례식 준비 상황을 점검한 뒤 임직원 대부분 퇴근하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여러 경영 변수가 많아 연말연초에도 휴일 없이 일했다고 이 회사 고위 임원은 전했다.

“올해 대기업의 경영 화두가 뭐냐”는 물음에 이 임원은 “글로벌 불황과 불안한 환율 움직임에 잘 대응해야 하는 기업 본연의 과제 외에도 큰 숙제가 있다. 2월25일 출범할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잘 적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들이 다음달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홍위병’처럼 유행한 경제민주화 논란이 구호뿐이었던 것과 달리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정책화가 예고되고 있어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기존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혁에 대한 걱정은 한숨 덜었어도 우려는 여전하다. 이 고위 임원은 올해 내내 부담으로 작용할 새 정부 정책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년 연장 △채용·투자 확대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압박’은 이미 시작됐다는 게 재계 분위기다. 지난달 26일 박 당선인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총수들에게 “중소기업 영역이나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는 것은 자제했으면 한다. 서민업종까지 재벌 2·3세가 끼어들고 땅이나 부동산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건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고 말했다. 골목상권 침범과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직접 질타한 것이라는 해석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어떻게 법제화될지 법무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내부 수요에 매출 상당 부분을 의존하던 정보기술(IT) 서비스, 물류, 건설, 광고 분야 계열사는 해외 사업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병 등을 통해 계열사 수도 줄인다.

정년 연장 등 일자리 관련 정책도 리스크다. 박 당선인은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정년 연장, 해고요건 강화,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 구성 등은 박 당선인의 경제정책 근간인 ‘근혜노믹스’의 대표적인 과제다.

글로벌 불황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대기업들에 60세까지로 정년을 연장하라는 것은 고통스런 숙제다. 조선 건설 철강 등 일부 업종에선 적극적 구조조정을 통해 생존을 모색해야 할 판이다.

채용과 투자 확대 요구도 부담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 채용과 투자를 늘리라는 요구가 구체화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문제는 글로벌 불황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점이다. 삼성은 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해온 반도체, 디스플레이 투자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글로벌 75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춰놓아 더 이상 투자를 늘리는 데 부담을 느낀다.

재계 관계자는 “박 당선인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기업을 키웠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며 “아버지의 수혜를 입은 대기업들이 민생과 경제활성화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느낄 경우 매섭게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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