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승진 꺼리는 서울시 간부들

입력 2013-01-02 17:03   수정 2013-01-02 21:35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서울시 3급 이상 고위직 인사가 발표된 지난달 27일, 시청사 복도에서 A국장을 만났다. 그는 연말 인사에서 요직으로 영전이 유력시됐지만 잔류하게 된 터라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잘된 거죠. 굳이 앞에 나섰다가 찍힐 이유가 있나요.”

공무원들이 승진이나 핵심 보직을 원한다는 건 상식이다. 국장급 이상 고위직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 인사에서는 사정이 달라 보였다. 대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승진이나 핵심 부서로의 이동을 원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2급직인 B실장은 아예 1급 승진을 고사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C본부장은 핵심 요직인데도 자신의 보직을 그만두겠다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과 지근거리에 있는 대변인엔 물망에 오른 간부들이 고사하는 바람에 인선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시 중견 간부는 “박원순 시장 취임 뒤 1급 간부 5명이 한꺼번에 옷을 벗은 게 남은 간부들에겐 트라우마가 됐다”고 말했다. 2011년 10월 부임무렵 박 시장은 줄곧 조직 안정을 강조해 왔던 터라 1급 5명의 동시퇴진이 서울시 간부들에겐 충격이었다. 서울시에서 1급 간부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물러난 건 처음이었다. 당시 5명은 전임 시장 때 중용된 간부들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간부들이 벌써 1년반 뒤의 다음 시장선거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핵심 요직을 기피한 이유다. 한 간부는 “1년반 뒤엔 인사권자가 바뀔 수 있는데 (시장임기) 후반기에 자칫 측근으로 보였다가 새 시장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어떻게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연말 인사에서도 전임 시장 때 중용됐던 간부들은 대부분 뒤로 밀렸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선출직 시장의 후반기에 몸을 사리고 ‘차기’를 의식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전임 시장 때 전면 무상급식 반대의 선봉에 섰던 D국장은 박 시장 취임 직후 무상급식 시행안을 들고가 결재를 맡았다.

앞선 인사선례 때문에 시 간부들이 시장임기 후반기에 몸사리기와 ‘속도조절’에 나선다지만 임기가 아직 1년반이나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보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복지부동(伏地不動)하게 만든 물갈이 인사가 문제일까, 눈치를 살피는 개인들의 보신주의 구태가 더 문제일까.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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