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인이 기업인의 언어를 쓰지 못하는 어떤 新年辭

입력 2013-01-02 17:04   수정 2013-01-02 21:32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내놓은 신년사를 읽는 것이 그다지 편치 않다. 세계를 뛰고, 1등이 되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최고의 실적을 만들어 내자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산업으로 애국하자는 구호라도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총수들은 신년사에서 기업에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거나 기업 시민의 역할을 기꺼이 다하겠다는 등의 정치적 약속들을 장황하게 풀어놓았다. 어울리지 않게도 동반 성장과 국민 행복을 강조하는 신년사도 있었다.

신년사란 각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내보이는 것이요 올 한 해도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총수의 신년사를 보면 ‘올해 저 그룹은 무엇으로 승부하고, 사업전략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업인들이 기업인의 언어가 아닌 정치의 수사학을 억지춘향으로 되뇌고 있는 것이다. 신년사에 쓰이는 기업의 언어는 분명 따로 존재한다. 그것은 경영 성과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목표와 관련된 것이어야 마땅하다. 지난해 이맘 때의 신년사만 하더라도 도전이나 성장, 신시장 개척, 생산성, 글로벌 경쟁력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도 기업이 커나가고 성장할 때나 가능한 것이지 시장에서 패배해 정부에 기대게 되고 도산에 임박하면 모든 것이 공염불이 되고 만다. 하지만 지금 국내 기업들은 경영 목표를 말할 때조차 상생이나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를 끼워넣어야 눈치를 덜 보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사회적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기업가로부터 기업의 언어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경착륙이 우려되며 파국적 경기침체에 대한 걱정이 높은 시기다.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기업가들도 자신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를 바란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고용을 늘리고 소비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기업의 본질이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가들이 기업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위험한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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