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인근 스랑 지역에서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리즈키 마라다노 씨는 최근 하나은행 탕그랑 지점에서 루피아화로 운전자금을 빌렸다. 상담부터 담보 확인, 대출 실행까지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현지 은행들은 석 달 이상 걸리는 일이다. 금리를 공개하긴 어렵지만 연 9~11%대에 현지 중소기업인들에게 대출한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지난해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의 예대마진은 4.9%포인트 정도다. 2%포인트 밑으로 순이자마진(NIM)이 곤두박질치는 국내 영업환경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좋다.
베트남 샐러리맨인 응우옌 툭 야오 씨는 2000년부터 호찌민 신한베트남은행의 단골 고객이다. 그는 “신한베트남은행이 현지 은행보다 훨씬 친절하고 이용하기 편리하다”며 “모든 거래를 여기서 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신용카드 사업에서도 결실을 맺고 있다. 이 은행은 베트남에서 카드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5만명의 회원을 모았다.
저성장에 경쟁 격화로 수익성이 나빠진 국내 금융사들이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시아 금융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중국 일본에 이어 최근에는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거쳐 캄보디아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까지 ‘K머니 로드’를 열어가고 있다. 금융위기 여파로 유럽계 은행이 해외 사업을 축소하는 틈을 활용해 현지 금융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 금융지주사 해외 점포의 총 순이익은 6억3280만달러다. 이 중 아시아에서 번 돈이 4억4710만달러로 70%에 이른다.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 금융을 배우려는 열기가 한류 바람만큼이나 뜨겁다.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증권거래소가 투자한 자금으로 현지 증권거래소가 개설되고, 한국 은행들이 계좌별 비밀번호 시스템 등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오랜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금융시장을 개방한 미얀마에서도 하나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이 잇따라 사무소를 열고 개인 및 기업금융 시장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물론 ‘K머니 로드’에 올라 타는 게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했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이진혁 인도네시아키움증권 대표는 “10년 뒤 꽃을 피우겠다는 마음으로 씨를 뿌리면 ‘금융 코리아’ 깃발이 동남아에 휘날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이상은/호찌민=황정수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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