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썰렁… 한·일관계 악화도 영향
“이랏샤이마세, 미테 구다사이.(어서오세요. 보고 가세요.)”
9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매장 밖에 늘어서서 일본인 관광객을 부르는 점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일본인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요즘 명동을 지나다니는 일본인 수가 작년의 절반밖에 안된다”며 “국내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추위까지 겹쳐 매출이 10% 이상 감소했다”고 말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 엔저(低)와 한·일 관계 악화 영향으로 일본인 관광객마저 급감하면서 유통·관광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호텔 예약률 ‘뚝’, 백화점 부진
일본인 관광객 감소의 직격탄을 받는 곳은 호텔과 유통업계다. 투숙객 중 일본인 비중이 50% 이상인 롯데호텔은 이날 현재 1월 객실 예약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포인트 하락, 80%를 밑돌고 있다. 힐튼호텔과 더플라자호텔도 이달 객실 예약률이 지난해 1월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은 50~60%에 머물고 있다. 신라호텔이 10일부터 전면 개·보수에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업황 악화 폭은 더 크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독도·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지난해 9월부터 일본인 투숙객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며 “민간 교류가 위축되면서 국제행사 참석자 등 단체 투숙객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일본인 입국자 수는 지난해 8월 34만6950명을 정점으로 9월 30만8882명, 10월 26만9732명, 11월 24만9481명으로 줄었다. 관광공사는 지난달 일본인 입국자도 전년 동월보다 20% 이상 감소한 23만명에 그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형 백화점들이 새해 들어 일제히 시작한 세일도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지는 못하고 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의 지난 4~8일 기존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3%와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현대백화점은 같은 기간 기존점 매출이 8.0% 증가해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강추위도 소비 위축에 한몫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지역 평균 기온은 영하 7.9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영하 4.3도)보다 3.6도 낮았다. 적당한 추위는 방한복 등 겨울용품 판매를 촉진하기도 하지만, 혹한이 이어지면 쇼핑객 자체가 줄어들어 소비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엔저·추위 지속 우려
일본인 관광객 감소와 강추위 등 소비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유통·관광업계는 보고 있다. 원화로 환산한 일본인의 구매력에 영향을 미치는 원·엔 환율은 하락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량 공급을 늘리고 있어서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 1월 100엔당 1500원대에서 지금은 1200원대 초반으로 20%가량 하락했다.
한·일 관계 회복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병찬 관광공사 일본팀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일본 왕의 과거사 사과를 요구한 이후 단체여행객이 크게 줄었다”며 “한·일 관계가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연 네이처리퍼블릭 이사는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지만 구매력 면에서 아직 일본인에 못 미친다”며 “백화점이나 면세점보다 로드숍이 악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호/서화동/민지혜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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