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유럽 경제활력 갉아먹는다

입력 2013-01-09 16:55   수정 2013-01-10 06:24

저금리·정부 보조로 목숨 부지…부도율 10년새 15→2% 되레 줄어

건실한 獨마저 '비틀' 4분기 GDP 뒷걸음질



“좀비 기업의 부흥.”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 이익을 잘 내지 못하면서도 낮은 대출금리와 정부 보조금 등에 의존해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좀비 기업’이 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 보도했다. 좀비 기업들이 오래 생존하는 만큼 산업 구조조정이 지연돼 불황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나마 유럽에서 탄탄한 성장을 지속해온 독일 경제도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좀비 기업들이 횡행하는 가운데 유럽의 성장 엔진도 식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금리에 연명하는 좀비 기업

독일 리스크관리회사 크레디트리폼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회사 중 3분의 1이 수익을 못 내면서 기업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파산기업 거래중개업체 R3는 영국 기업의 10%가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만 겨우 갚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2003년 15%에 육박했던 유럽 내 기업 부도율이 경제가 어려워지는 와중에도 2012년 말 2.3%까지 떨어졌다”며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퇴출됐을 기업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좀비 기업들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유럽 각국이 기업에 제공하는 보조금과 2007년 연 4%에서 지난해 연 0.75%까지 떨어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정책금리에 있다. 기업을 부도처리해 손실이 불어날 것을 염려하는 은행들의 소극적인 대처도 이유다.

앤드루 그림스톤 딜로이트 구조조정담당 파트너는 “재무제표상의 손실 증가를 염려하는 은행들이 적극적인 대출 회수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오래 연명하면서 20년간의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과 같은 길을 유럽 경제가 따라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중앙은행도 지난해 10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보조금과 저금리로 살아남은 기업들 때문에 자본이 보다 생산적인 영역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앨런 블룸 언스트앤영 글로벌구조조정팀장은 “실패한 기업들은 빨리 정리돼야 새로운 기업들이 나타나 경제에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원리”라며 “기업들이 가라앉고만 있을 뿐 도산하지 않아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유럽에서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엔진 독일도 식나

그럼에도 유럽의 각국 정부는 좀비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다. 이들 기업을 도산시키면 그렇지 않아도 치솟고 있는 실업률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태트는 8일 유로존의 11월 실업률이 11.8%로 전달보다 0.1%포인트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수치는 2011년 9월 이후 거의 매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로존 위기의 무풍지대처럼 보였던 독일의 성장세도 둔화되고 있다. 필리프 뢰슬러 독일 경제부 장관은 7일 “2012년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75%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이 같은 발표와 3분기까지 성장률을 바탕으로 4분기 독일 경제가 전 분기 대비 -1.0% 뒷걸음질친 것으로 추정했다.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지난해 11월 수출도 전달 대비 3.4% 감소했고 수입도 3.7% 줄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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