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억 건물' 유치권 걸어 유찰…33억에 매입

입력 2013-01-09 21:54  

법원경매 '작전세력' 차단…예고등기 폐지 이어 유치권도 손질

"법원에 신고된 유치권 90%는 가짜"
채무자·브로커, 낙찰가 떨어뜨리기 악용



천모씨는 2004년 부산 해운대구에 12층짜리 모텔을 지었지만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는 처지가 됐다. 그는 유치권을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에 낙찰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유치권(留置權)이란 시공사가 공사대금을 받을 때까지 건물을 갖고 있을 권리다. 유치권 내용이 사실이라면 낙찰자는 낙찰가격 이외에 공사대금까지 모두 부담해야 한다. 천씨는 시공사에 공사대금 일부를 주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시공사와 짜고 수억원에 불과한 외상 공사비를 수십억원으로 부풀려 법원에 신고했다. 유치권의 영향으로 모텔은 네 차례나 유찰된 끝에 2010년 7월 감정가격(71억원)의 46%인 33억원에 낙찰됐다. 검찰에 고발된 천씨 등은 작년 7월 부산지법으로부터 경매방해·사기미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유치권 90% 가짜”

법무부가 등기된 건물의 유치권 규정을 손질하기로 한 것은 법원 경매시장에서 유치권을 이용한 ‘작전’이 난무하고 있어서다. 경매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물을 경매로 날리게 된 채무자나 경매 브로커의 상당수는 유치권을 악용해 낙찰가를 떨어뜨리거나, 낙찰자에게 돈을 뜯어내고 있다.

현행 민법은 채무자가 유치권을 행사하면 사실상 우선적으로 공사대금을 받도록 보장하고 있다. 은행 등 다른 채권자들이 경매 대상 부동산을 먼저 저당잡았어도 마찬가지다. 영세한 건설사들의 보호를 위한 조치지만 유치권이 행사된 경매물건의 경우 대부분 수요자들이 응찰을 꺼리게 된다. 이 때문에 유찰 횟수가 늘면서 낙찰가격은 급락하게 된다. 이로 인해 건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큰 손해를 보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경매전문인 법무법인 열린의 정충진 변호사는 “법원에 신고된 유치권의 90%는 가짜거나 공사금액이 부풀려져 있다고 보면 된다”며 “등기 부동산에 대한 유치권 폐지는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매시장 투명성 향상 기대감

유치권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법원도 최근 ‘허위 유치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우선 유치권 신고를 받을 때 가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관련 서류를 보완하도록 한다. 낙찰 이후에는 2~3년씩 걸리는 정식 재판이 아닌 ‘인도명령’을 통해 단기간에 가짜 유치권자를 건물에서 내쫓게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가짜 유치권자에 대한 형사처벌도 강화되는 추세다. 최광석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수억원의 손해배상과 함께 6개월~1년 안팎의 실형을 선고하는 판결이 자주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법원은 유치권과 함께 낙찰가를 떨어뜨리는 수단으로 자주 쓰여온 예고등기를 지난해 폐지했다. 예고등기는 부동산을 경매로 날릴 처지에 놓인 채무자가 소유권 분쟁이 있는 것처럼 꾸며 등기부에 기재하는 것이다. 소유권 분쟁이 있으면 낙찰자가 소유권을 넘겨받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물건들은 투자자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유찰 횟수도 늘어난다. 결국 낙찰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경매컨설팅업체 EH경매연구소의 강은현 대표는 “경매시장 활성화의 걸림돌이던 ‘가짜 유치권’이 근절되면 경매 거래가 크게 투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성근/정소람 기자 tru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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