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품질 높이고 내실 다져 브랜드 혁신…'엔低 효과' 일본차 꺾겠다"

입력 2013-01-10 15:30  

Cover Story - 현대자동차

고비마다 승부사 기질
글로벌 경기 침체는 '기회'…브랜드가치 한단계 올릴 것

키워드는'품질과 내실'
딜러 양성 판매네트워크 강화…주요 생산거점 부품공급 확충



“우리가 살 길은 해외 시장 개척밖에 없다.” (2012년 12월10일 해외 법인장 회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전략을 짜라.” (2012년 12월24일 그룹 계열사 사장단 회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위기 의식’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의 연비 과장 논란, 내수 시장 침체,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등 온갖 악재 속에서 작년 판매 목표를 10만대 이상 초과 달성했다. 그럼에도 정 회장의 표정에선 좀처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지난 2일 열린 시무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정 회장의 신년사 요지는 ‘위기의식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올해는 계속되는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내외 시장 환경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일본차와 브랜드 가치로 정면 대결

현대차 내부에선 “위기를 미리 감지해 최선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정 회장 특유의 경영 감각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 5년간 양적 성장에 주력해왔다. 불황의 기운이 엄습했던 지난해에도 중국 3공장과 브라질 공장을 준공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게 정 회장의 판단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중국 등에선 엔저(低)효과를 등에 업은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차와의 한판 경쟁이 예상된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 회장의 승부수는 ‘내실 강화’다. 그는 올해 경영 지침으로 “품질 개선을 통해 브랜드 혁신을 이루고, 질적 성장을 통해 내실을 다질 것”을 주문했다. 판매량 목표도 당초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해 ‘750만대 이상’으로 잡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741만대로 낮췄다. 대신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려 일본차와 정면 대결을 벌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위기에 강한 ‘MK 리더십’

정 회장은 과거 고비 때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왔다. 업계와 시장의 예측과 전혀 다른 결정으로 성과를 낸 적이 많았다. ‘위기에 강하다’는 안팎의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2011년 미국 시장 대응이 대표적이다. 그해 미국에서 현대차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공급물량이 달리자, 미국 판매법인과 현지 딜러들이 앞다퉈 공장 신·증설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 회장의 답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의 결정은 시의적절했다. 그해 하반기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유로존 위기가 확산되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이 침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주 공장을 신·증설하는 대신 근무형태를 24시간 완전가동 체제(3교대제)로 바꿔 물량 부족에 대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로 전 세계 판매 전망이 불투명했던 지난해 3월, 정 회장은 유럽 현장경영에 나서 “불황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고 지시했다. “글로벌 자동차시장 위축은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는 이에 따라 경쟁사들이 감산하는 것과 정반대로 마케팅 공세에 나섰다. 그 결과 현대차는 지난해 3분기까지 유럽시장 판매량을 2011년 같은 기간보다 11.9% 늘릴 수 있었다. 자동차 업체 중에서 최고 성적이다.

○승부사 기질로 이룬 ‘글로벌 톱5’

중국 시장에서도 정 회장의 승부수는 통했다. 현대차는 작년 7월 중국 3공장(연산 40만대)을 준공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 와중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짓는 건 과잉 투자라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정 회장은 물량을 늘려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역발상 전략은 성공했다. 현대차 중국 판매량(기아차 포함)은 지난해 134만여대로 2011년보다 14% 증가했다. 중국 법인은 이로써 미국(126만대), 한국(115만대)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지난해 자동차 수요 감소라는 악재 속에서 현대차가 글로벌 ‘톱5’ 자리를 지키는 힘이 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변방의 기업이었던 현대차를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린데는 정 회장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올해 키워드는 ‘품질’과 ‘내실’

지난해 실적 목표를 초과달성했지만 올해 현대차가 처한 경영 환경은 좋지 않다. 미국·중국·유럽 등 지역별 경쟁 심화와 소비심리 위축, 원·달러 및 원·엔 환율 하락 추세 등 변수가 많다.

정 회장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경영 화두를 ‘품질 개선’으로 정했다. 양적 경쟁으로 승부를 걸었던 작년까지와 달리 올해는 질적 경쟁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작년 12월 현대·기아차 해외 법인장 회의에서 “해외 시장에서 품질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며 “국내 생산량의 70%가량이 해외에서 팔리는 만큼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역별 우수 딜러 양성 등 판매 네트워크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 내 연비 과장 논란을 계기로 품질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내실 강화’도 지시했다. 정 회장은 작년 말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브라질 공장 준공으로 글로벌 생산 거점이 완성됐다”며 “회사 차원에서 생산능력을 확충할 계획은 없으며, 이제부터 질적 성장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에 따라 올해 추가 생산 기지를 확보하지 않는 대신 기존 주요 생산 거점에 자동차 부품 공급이 원활하도록 주요 계열사와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내실 강화 차원에서 연초부터 급변동하고 있는 환율 문제에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원고(高)·엔저(低) 추세가 장기화하면 일본차와의 경쟁에서 밀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 회장도 작년 말부터 “환율 변동으로 회사가 입는 환차손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원·달러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영업이익 9%가 날아간다”고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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