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장군·장관·역장·CEO·대통령…질주하는 여성

입력 2013-01-11 09:20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10월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회의’에 참석해 외할머니가 겪은 ‘유리천장(glass ceiling)’ 사례를 얘기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하와이은행에서 할머니가 가르쳤거나 할머니보다 실력이 없는 후배남자들이 먼저 승진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할머니는 휴가도 안 가고 일만 했으나 부행장 자리가 끝이었다. 만일 할머니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누구보다도 은행을 잘 운영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이 그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주어진 승진한계, 즉 유리천장이었다.”

# 美 3번째 여성 국무장관 

이 때문이었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여성들을 잇따라 중용, 유리천장을 깨는 데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폴브라이트, 라이스에 이어 세번 째로 여성국무장관으로, 히스패닉계 여성으론 최초로 소냐 소토마이어를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776년 미국이 독립한 지 230여년 동안 국무장관 자리는 거의 남성용이었으나 최근 10여년 사이 여성의 몫이 됐다. 국무장관은 대통령 임명직이긴 하지만 금녀의 벽이 깨진 것은 분명하다.

‘최초의 여성’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나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대표적 인물이다. 세계은행과 함께 세계 금융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IMF 총재는 1944년 출범 이후 줄곧 금녀(禁女)의 자리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대표적인 ‘남자의 나라’로 꼽히는 독일의 첫 여성 총리에 올라 유럽 정치와 경제를 호령 중이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도 21세기에 와서야 유리천장을 하나둘씩 제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유리천장은 분명 세계 곳곳에서 깨지고 있다.

# 1000년 전 깨진'천장' 
 
여왕의 등장은 ‘성골만 왕이 된다’는 골품제에 따라 시작되긴 했으나 중요한 것은 여왕들이 집권 이후 남자왕 못지않은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1000여년 전에 이미 여자와 남자는 능력상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이 땅에서 입증했다고나 할까. 영국에서 여왕이 나오고 19세기 말 중국 청나라에서 서태후가 사실상 황제에 오르긴 했으나 신라가 한수 위였다.

경제개발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기술발전(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등)으로 여성이 가사로부터 해방된 현대에 들어 각 분야에서 유리천장은 더 빨리 깨지거나 금이 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아직도 남성과 여성 간 임금 격차, 승진 한계, 노동력 편견이 존재하지만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기업 인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요즘 평사원으로 입사해 CEO까지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를 쓰고 있는 입지전적 여성 리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 P&G의 이수경 사장. P&G그룹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사장이 됐다. 1994년 생리대 브랜드 위스퍼 어시스턴트 매니저로 입사한 뒤 다양한 P&G 제품 브랜드를 선보여 1위를 지켜냈다. ‘여성은 안된다’는 편견을 깬 사례다.

남성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리천장이 깨지는 소리가 나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채양선 전무 얘기다. 기아차가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브랜드 톱100에 진입하는 데 능력을 발휘해 올해 전무로 승진했다. 현대그룹에선 채 전무 외에도 김혜경 이노션 전무, 최명화 현대자동차 상무, 이미영 현대카드 이사, 백수정 현대캐피탈 이사, 김원옥 현대엔지니어링 이사대우가 여성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113년 만의 여성 철도역장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군대에도 여성의 승진한계에 변화가 일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전체 장교 가운데 여성은 5.7%인 3593명이다. 양승숙 예비역 준장(62)이 2001년 첫 여성장군이 된 이래 8명의 여성 장성이 나왔다. 현역으로 복무 중인 여성장군도 3명이나 된다. 1997년 각군 사관학교가 여생도의 입학을 허용한 지 이제 15년이 지난 만큼 앞으로 군대 내 ‘우먼 파워’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남성 사회인 철도에서도 113년 만에 여성역장이 나왔다. 김양숙 서울역장이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유리천장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일대 사건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 시대개막’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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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vs '깨진 유리창'

유리천장은 1970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처음 사용한 신조어다.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여성 직장인들의 승진 최상한선을 유리천장으로 표현했다. 여성과 남성 간 승진에 차별이 없다고 선언하는 기업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유리에 비유한 것이다. 이후 미국 정부는 점차 강해지는 여성인권과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유리천장 위원회(Glass Ceiling Commission)를 만들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고용시장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미국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3월 발표한 글에서 처음 사용했다. 글의 제목은 깨진 유리창(Fixing Broken Windows: Restoring Order and Reducing Crime in Our Communities)으로 사회 무질서가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론이다.

이론의 핵심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점점 슬럼화가 진행되기 시작하고 절도나 건물파괴 등과 같은 강력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위반이나 침해행위가 발생했을 때 이것들을 제때에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더 큰 위법행위로 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은 일종의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무관용 원칙은 사소한 위법행위도 죄질이 나쁜 경우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사법원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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