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오후 2시 서울시내 한 사립대학 건물. 체크무늬 재킷과 갈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코트를 걸친 50대의 ‘중후한 신사’가 들어섰다. 손모씨(57·무직)였다. 서류 가방까지 들고 있는 모습은 교수풍이었다. 3층 교수 연구실 복도 구석에서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는 교수를 유심히 지켜보던 손씨는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연구실에 들어가 현금과 신용카드를 훔쳤다. 대학 건물 안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절도행각을 벌였다. 손씨는 전과 11범의 절도범이었다.
이런 수법으로 서울시내 대학 6곳을 돌면서 교수 연구실을 턴 손씨는 지난달 24일 범행 장소를 인천 지역 한 교육지원청으로 넓혔다. 민원인들의 출입이 잦아 현관 출입자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노렸다. 대학 연구실에 들어갈 때처럼 문단속을 하지 않은 사무실에서 여직원의 핸드백을 뒤져 현금과 신용카드를 빼냈다. 직원들의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도 들고 나왔다. 훔친 신용카드로 인근 백화점과 귀금속점에서 귀금속을 산 뒤 되팔아 현금 2290만원을 만들었다.
손씨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일까지 18차례에 걸쳐 훔친 금품은 3600여만원 상당. 하지만 피해를 당한 교수나 직원들은 자신이 도둑맞은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 범행 현장에서 CCTV에 포착된 손씨를 발견했지만 말쑥한 차림에 손씨가 절도범일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등의 혐의로 11일 손씨를 구속했다. 경찰 조사에서 손씨는 “지난해 5월 출소한 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시 기사 등 직업을 가져보려 했지만 절도 전과 때문에 매번 거절당했다”고 범행 이유를 밝혔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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