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1일 경기 부양을 위해 20조엔(약 240조원) 규모의 긴급 경제대책을 확정했다.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와 더불어 대규모 재정지출을 병행,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과 엔고(高)에서 탈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나친 엔화 약세가 무역수지 적자폭을 늘리고, 방만한 정부 지출로 재정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돈 풀어 경기 살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경제대책을 발표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불행히도 이전 민주당 정권은 분배만 중시하고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실패했다”며 “앞으로 아베 내각은 경제 회생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내각이 제시한 경제대책의 사업 규모는 총 20조2000억엔. 이 중 10조3000억엔(약 124조원)은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정부가 지출하고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이 담당한다.
분야별로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등 부흥·방재 분야에 재정지출 3조8000억엔을 포함해 총 4조5000억엔을 투입한다. 이 밖에 성장 촉진과 생활안전 분야에는 각각 3조1000억엔의 국고를 쏟아부을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경제대책을 통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가량 늘어나고, 60만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행 압박 지속
아베 총리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을 내각의 경제정책에 동참시키려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재정지출이 효과를 보려면 적극적인 금융완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은행이 실물경제에도 책임을 지길 바란다”며 “고용 확대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율에 대한 압박도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 엔고로 경쟁력을 잃었다”며 “엔고를 시정하는 것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동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4월 임기가 만료되는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 인선과 관련해서는 “출신이 아닌 정권과 생각이 일치하는지 여부를 갖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무제한 금융완화를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를 지원할 수 있는 인사를 뽑겠다는 의미다. 아베 총리는 이 밖에 정부와 일본은행이 체결할 정책공조 공동문서에 물가상승률 목표 2%를 구체적으로 명기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일본 경제에 독 될 수도
아베 총리의 금융완화 및 경기부양 정책이 오히려 일본 경제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재무성은 이날 “작년 11월 경상수지가 2224억엔의 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85년 이후 작년 1월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적자폭이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작년 1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무역수지가 9534억엔의 대규모 적자를 낸 영향이 컸다. 무역수지 적자폭은 역대 세 번째다. 아베 내각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엔화 가치가 추가 하락하면 수입액이 급증, 무역 적자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이미 240% 수준에 도달한 국가부채 비율이 더욱 높아져 국가신용등급 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아베 총리의 강력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인플레이션 시대로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단순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성장동력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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