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트 생산 연간 40억개…'품질'에만 매달렸더니 '글로벌 빅5'로 우뚝

입력 2013-01-11 17:20   수정 2013-01-11 22:27

기업&기업人 - 파워기업인 생생토크 어진선 삼진정공 사장

종업원·협력업체 한마음으로 품질관리…작년 7000만弗 수출
40년 너트생산 외길…中현지공장 올해 완공…'세계 경영' 본격화




1979년 5월 하순 미국 시카고 오헤어공항.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이 공항의 활주로를 점보기 한 대가 미끄러지듯 벗어나 창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툭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물체 하나가 땅으로 떨어졌다. 엔진 한 개가 분리된 것이다. 고도 6000피트에서 비행기는 중심을 잃더니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사고로 270여명이 죽었다. 조사 결과는 어이없게도 볼트와 너트가 잘 연결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작은 부품 하나가 참극을 불러온 것이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나 기차에서 너트가 풀려도 비극이 생길 수 있다.

충남 천안 석곡리에 있는 삼진정공. 이 회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 회사 제품을 쓰지 않는 사람도 거의 없다. 약 11만㎡의 넓은 부지에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서면 기계 수백대가 쉴새없이 돌아간다. 자동차용 너트를 만드는 설비들이다. 건설용이나 산업기계용 너트도 만들지만 생산 제품의 90% 이상이 자동차용이다.

자동차 한 대에는 수백개의 너트가 들어간다. 엔진 조향장치 축 바퀴 등 접속 부분은 대부분 너트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국내 최대 자동차 너트업체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GM코리아 등에 들어가는 너트의 상당 부분을 이 회사가 공급한다.

이 회사는 미국의 GM이나 프랑스 르노자동차 등으로도 수출한다. 어진선 삼진정공 사장(60)은 “지난해 수출은 완성차에 들어간 것과 직수출을 포함해 약 7000만달러에 달했다”고 말했다. 2006년 무역의 날에 3000만불 수출탑, 2011년에 5000만불탑을 받은 데 이어 빠른 속도로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850억원, 2010년 1350억원에서 작년에는 1700억원(추정)을 기록했다. 7년 만에 2배로 늘어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어 사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일본 너트와 비교해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은 더 싸 국제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품질을 가장 중시한다. 어 사장은 “첫째도 품질, 둘째도 품질, 셋째도 품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너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지만 안전과 직결돼 있는 아주 중요한 부품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사가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데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우수한 설비다. 이 회사는 독일의 뛰어난 너트 제조설비를 갖추고 있다. 일부 설비는 독일의 스트라이커와 기술 제휴를 맺어 공동 개발해 쓰고 있다. 어 사장은 “기술제휴를 통해 국산화한 기계를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로도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종업원의 숙련된 기술력이다. 어 사장은 “우리 회사의 종업원 가운데 약 절반이 20년 이상 근속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계 소리만 들어도 불량 여부를 판단할 정도다. 아무리 설비가 좋아도 이를 잘 다루지 못하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

셋째, 협력업체와의 ‘상생’이다. 어 사장은 ‘동반성장’이나 ‘상생’ 등 요즘 회자되는 용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협력업체와 상생해 왔다. 너트는

선재를 잘라 구멍을 내고 나사산(나사의 골과 골 사이의 높은 부분)을 만드는 등 여섯 가지 공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열처리 도금 등 후가공 공정이 이어진다. 이는 이웃에 있는 협력업체들이 맡는다.

어 사장은 “15개 협력업체들이 후가공을 잘해줘야 품질이 높아진다”며 “1990년대 중반부터 이들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품질 향상에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납품대금도 현금으로 결제하고 해마다 한마음체육대회를 통해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이들과 한세트의 볼트·너트처럼 단단히 조여져 한덩어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삼진정공은 어 사장의 부친인 고 어윤홍 회장이 1973년 부천에서 창업했다. 꼭 40년 전이다. 대학 졸업 후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청계천에서 베어링 유통을 해오던 어 사장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27세인 1979년 입사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자동차산업은 미미했고, 이 회사의 매출도 보잘것없었다. 게다가 2차 오일쇼크가 터져 회사가 무척 어려웠다. 그는 “당시 종업원은 30~40명에 불과했는데도 이들에게 월급 줄 돈이 없어 입사 후 5년 동안은 돈 구하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회사가 궤도에 올라선 것은 1985년 현대자동차의 베스트셀러 ‘엑셀’이 출시되고 수출이 본격화하면서다. 그동안 기술개발 생산 영업 등에 대한 업무를 파악한 어 사장(당시 이사)은 공장 확장을 주도, 1990년 본사를 인천 남동산업단지로 옮겼다. 이후 2000년부터 사장을 맡아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의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1994년 울산에 제2공장을 세우고 2008년에는 남동공장의 8배가 넘는 규모의 천안공장을 지어 본사와 1공장을 이전했다. 2010년에는 전주에 제3공장을 지었다.

이같이 설비를 확장한 것은 자동차 판매가 증가할 것으로 본 데다 직수출도 늘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연간 자동차 1000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생산시설을 갖췄다. 현재 생산하는 너트는 연간 40억개가 넘는다. 종류도 3000여가지에 이른다.

그는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2005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판매법인을 세운 데 이어 올해는 중국 베이징 현대자동차 부근에 현지공장도 완공할 예정이다. 청년 시절 입사한 어 사장은 이제 환갑을 맞았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어 사장은 “자동차용 너트 분야에서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세계 5위 수준에 올라섰다”며 “앞으로 글로벌시장 교두보 확보, 고부가가치제품 개발을 통해 세계 일류기업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가족처럼 대하니 종업원 모두가 천안으로 내려와

2008년 4월. 삼진정공은 인천 남동산업단지에서 천안으로 이전했다. 이 회사가 있는 석곡리는 천안 중심지에서 20~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자연 풍광은 아름답지만 대중교통은 다소 불편한 곳이다. 통근버스도 없다. 이 회사 관리팀에선 혹시라도 숙련된 기술자들이 안 따라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어 사장은 “당시 종업원 150명이 전부 내려왔다”며 “그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들이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가족 같은 분위기 덕분이다. 이 회사는 종업원을 위해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 △세 끼 식사 무료 제공 △기숙사 △당구장·탁구장 △헬스장 △국제규격 축구장 △조깅트랙 등 다양한 복리후생시설을 갖췄다.

축구장에는 사계절 운동할 수 있도록 인조잔디가 깔려 있고, 둘레에는 벚나무와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져 꽃이 피면 가족단위로 소풍 오는 사람이 많다. 국가대표 럭비팀 주장까지 한 경험이 있는 어 사장은 “기업은 럭비처럼 팀워크가 중요하다”며 “회사 발전을 위해선 무엇보다 종업원과 호흡을 맞추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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