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적 외환거래세' 도입 검토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최근 국내외 외환시장의 특징은 ‘원화 강세’로 요약된다. 글로벌 환율전쟁이 재연된 지난 3개월 전에 비해 원·달러 환율은 60원, 원·엔 환율은 250원이나 급락했다. 위안화를 비롯한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모두 절상됐다. 수출업체로 본다면 ‘환율 쇼크’에 해당하는 절상폭이다.
통화 가치가 특정국의 경제 실상이 반영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모든 통화에 대해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작년 성장률이 2.1%로 추락했고 올해도 2.8%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한국도 ‘안전통화 저주(curse under safe haven)’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모든 통화에 대해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쩐(錢)의 전쟁’으로 상징되는 국제 자금 흐름 구조를 반영한다. 성장률과 관계없이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위기를 거치면서 소강 국면에 진입했던 선진국 자금과 개도국 자금 간의 ‘머니 게임’이 최근 들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쩐의 전쟁’이라는 별칭이 붙여진 글로벌 머니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S자형 투자이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 이론을 각국의 발전 단계에 적용하면 1인당 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선진국은 중·장년기에, 1000~3만달러의 개도국과 중진국은 청소년기에, 1000달러 이하인 저개발국은 유아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투자의 3원칙인 수익성 안정성 환금성을 볼 때 금융위기 이후 풍부해진 유동성 때문에 투자자들은 환금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대신 수익성과 안정성은 오히려 위기 이전보다 더 중시한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선진국은 수익성이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고, 개도국은 이와 반대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선진국 자금은 높은 수익을 좇아 잉여자금은 펀드 형태로, 잉여자금이 없을 때는 금리 차를 이용한 캐리(carry) 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됐다. 반대로 개도국 자금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정형화된 국제 자금 흐름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그동안 유지돼 온 국제 자금 흐름 메커니즘이 흐트러졌다.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새로운 현상은 한국이 선진국의 수익성 추구 자금과 개도국의 안정성 추구 자금의 공동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한국도 일본처럼 ‘원화 저주’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리스크 이론에서 특정국 통화가 시장·유동성·신용 등 세 가지 위험이 적으면 안전통화로 평가된다. 가장 중요한 시장 위험(market risk)은 시장 상황 변화로 자산의 가치가 변동할 가능성을 의미하며 가격의 표준편차, 준분산 등으로 평가한다.
유동성 위험(liquidity risk)은 자산의 유동성이 부족해 결제 의무 이행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으로 거래량, 매매호가 스프레드 등을 통해 측정한다. 신용 위험(credit risk)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으로 통화의 경우 국가신용등급,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등에 반영된다.
지난 10년 동안 표준편차를 구해보면 원화의 시장 리스크는 최근 다소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가 많은 중심통화뿐 아니라 각국의 경제 규모와 비교해 볼 때도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변동성이 심하다는 의미다. 특히 특정국 통화의 하방 변동성을 측정하는 준분산의 경우 원화가 가장 높게 나온다.
원화의 유동성 리스크는 더 높게 나온다. 원화 거래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시장의 심도를 보여주는 매매호가 스프레드도 한국과 경제 여건이 비슷한 대만과 싱가포르 달러화보다 높다. CDS 프리미엄과 국가신용등급으로 측정되는 신용리스크는 최근 들어 개선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까지는 원화가 안전통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근처럼 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원화가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는 현상은 정책적으로 잘 대응만 한다면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통화 저주’에 시달리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늦었다고 하더라도 외국자금의 유입 속도를 조절하고 유입 외자의 성격을 파악해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환율 하락 속도만 조절하는 시장개입에 그쳤지만 대내외 금리 차를 축소하거나 평상시에는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환거래세(two way Tobin tax system)’ 도입 등 과감한 정책이 요구된다.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때다.
갑작스러운 외자 이탈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간접적으로 확보한 제2선 자금까지 포함하면 4000억달러가 넘어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 하지만 사전에 외국자금의 이탈 징후를 포착하는 것이 한국 경제 안정성과 정책 효율 면에서 더 중요한 대책이라는 점을 정책당국자들은 인식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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