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거위가 가르쳐준 서법의 비결

입력 2013-01-14 16:56   수정 2013-01-15 00:51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동진의 명필 왕희지(王羲之·303~379)는 거위를 좋아했다. 아름답고 유연한 곡선미, 호수 위를 조용히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우아한 자태에 매료됐다.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 창안에 골몰하던 그는 거위를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산 속의 도사가 거위를 키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길로 득달같이 달려가 팔기를 청했더니 도사는 뜻밖에도 노자의 도덕경을 써달란다. 즉석에서 일필휘지 써내려가자 눈이 휘둥그레진 도사는 자신이 키우던 거위를 몽땅 왕희지에게 안겼다.

그때부터 그는 밤낮없이 거위의 목놀림과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서법을 연구했다. 청말의 화가 임백년(任伯年·1840~1895)의 ‘희지애아도(羲之愛鵝圖)’는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남들이 한창 선배들의 서체를 모방할 때 그는 자연을 스승으로 삼았다. 역대 최고의 서체로 꼽히는 왕희지체는 그렇게 탄생했다. 틀 밖의 사고야말로 새로운 창조의 원천임을 왕희지의 삶은 잘 보여준다. 우물 밖에 해결책이 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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