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하경제 양성화'의 딜레마

입력 2013-01-15 17:07   수정 2013-01-16 00:11

김주완 경제부 기자 kjwan@hankyung.com


“현금으로 계산하면 10% 빼드릴게요.” 서울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음식을 먹고 난 손님에게 제안했다.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현금 거래로 소득을 숨겨 소득세를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뜻 현금으로 계산을 치른 손님은 “경제적 부담을 덜고 소상공인의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에…”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탈세다. 이 또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적한 지하경제의 한 부분이다. 박 당선인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꾸려진 한국금융연수원 근처에서도 이 같이 버젓이 지하경제가 형성돼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분명 옳은 정책이다. 불법 행위를 통한 소득이나 조세 회피를 잡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세금 탈루를 찾아내 공평 과세를 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동안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고소득자들의 탈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박 당선인이 약속한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서도 지하경제 양성화는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 당선인이 내세우는 민생 경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 곳곳에서 일상화된 지하경제를 단칼에 잘라내려다가는 서민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는 디지털 카메라를 현금으로 구입하면 카드 결제로 살 때보다 10~15% 깎아준다. 동대문 의류 상가에서도 현금가와 카드 결제가를 따로 제시한다.

동네 식당에서는 카드 결제를 아예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자영업자 평균 소득탈루율은 33.78%로 사업규모가 영세할수록 탈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소득 1억원 이하 소득탈루율은 71.68%로 50억원 초과 소득사업자의 탈루율(24.76%)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1년 전체소비지출 중 현금거래 137조원에서 57조원은 세원(稅源)으로 잡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당선인이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이 오히려 지하경제를 더욱 선호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자칫 서민들의 거센 조세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다 세련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김주완 경제부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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