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조달러 세계환경시장 개척하려면

입력 2013-01-15 17:11   수정 2013-01-16 00:17

시설공사 분리발주가 선결과제…일정 규모 공사는 중소기업 맡겨
환경 전문기업 대형화 유도해야

윤승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yoonsj@keiti.re.kr>



연이은 한파로 전 국토가 꽁꽁 얼어붙었다. 사회적 약자가 추위를 더 타듯이, 불황기에는 중소기업이 더 어려워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의 경기 체감 심리를 나타내는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가 최근 3년 사이 최저로 떨어졌다. 특히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9포인트나 낮은 63으로 나타났다. 경기실사지수는 올 겨울이 중소기업들에게 유난히 시리다는 것을 대변한다.

이런 때에 새롭게 들어설 정부가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에 대해 부문별로 계약을 분할하도록 하는 ‘분리발주 의무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또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9일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는 제도의 불합리, 거래의 불공정, 시장의 불균형 등 이른바 3불(不)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3불 문제가 심각한 업종 중 하나가 바로 환경산업기술 분야다.

한국의 환경시장은 연간 55조원 규모에 이른다. 국민들의 쾌적한 환경에 대한 여망에 부응해 환경부는 환경규제와 함께 1992년부터 국내 환경기술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왔다. 그 결과 환경산업체도 3만3000여 곳으로 늘었고, 우리도 선진국과 견줄 만큼 우수한 환경기술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환경산업 입찰현장은 어떤가. 자금력과 경험이 앞선 대기업이 환경시설 공사를 70% 이상 수주하고, 중소 환경산업체에는 저가로 하도급 계약을 맺는 주종관계가 형성돼 있다. 중소기업은 기술유출과 수익성 악화의 덫에 빠지고 경영구조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경기업 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16억원, 종업원 수는 6명에 불과하다. 85%가 영세한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 겨울 혹독한 추위와 대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요즘 환경전문기업들은 하나같이 생존 그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 환경전문공사가 건설공사로 발주되다보니 기술력을 갖춘 환경전문기업은 주계약자가 아닌 하도급자에 그쳐 이면계약, 대금지급 지연, 공사비 전가 등 불공정거래가 만연해 있다. 턴키공사금액 300억원 이하의 환경시설공사도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수주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주하는 10억원 규모의 작은 하수처리시설 공사에도 계열사를 앞세워 독식하고 있다. 현행 하도급법상 공사대금 비율 82%를 충족해야 하지만, 원청업체들은 하도급 업체로 등록하지 않고 공사대금의 50~60%선에서 환경설비나 부품으로 납품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환경시설 공사의 70% 이상을 대기업이 수주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개선되기를 대다수 중소 환경산업체는 염원한다. 중소환경기업들이 통합 발주에 묶여서 하도급 업체로 전락하지 않도록 환경시설공사를 분리발주하고, 일정 금액의 환경시설공사는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분리발주 제도는 이미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과 미국도 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일이 이들 국가 경쟁력의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기공사와 정보통신공사는 현재도 분리발주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전기공사에는 1만2000여 업체가 19조원 규모의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데, 1970년대 이래로 분리발주가 법제화돼 중소 전기업체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동안 철강, 조선, 정보기술(IT)이 우리 산업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환경산업이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다. 2015년이면 세계 환경시장은 1조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시장의 2배에 이르는 큰 시장이다. 특히 우리의 경제성장 패턴을 따라오는 동남아시아와 남미는 우리가 20여년 전에 직면했던 심각한 쓰레기, 대기오염, 수질오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검증된 환경기술을 확보한 우리 중소기업들에게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우리의 중소환경기업들이 글로벌 환경시장에 도전하려면 기술력, 시공실적을 축적할 수 있도록 환경전문기업의 전문화와 규모화가 필요하다. 그 첫 단추가 바로 환경시설공사의 분리발주다. 이를 통해 환경산업 종사자들이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고 눈밭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틔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윤승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yoonsj@kei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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