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 회장, 현대카드 사장에게 혁신의 길을 묻다

입력 2013-01-16 17:02   수정 2013-01-17 02:10

人生到處有上手 < 인생도처유상수 : 삶의 길 가는 곳마다 고수가 있다 >

글로벌CEO회의 초대
정태영 사장 2시간 강의
"디자인·마케팅 변화 필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에게 ‘혁신의 길’을 물었다. 현대카드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을 LG에 접목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기 위해 경영진 전략회의에 특별 강연자로 정 사장을 초빙했다. LG의 모토인 ‘시장 선도’를 위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구 회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 사장은 4대 그룹 총수 중 구 회장과 친분이 가장 두터운 사이로 알려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다.

LG그룹은 16일 경기 이천 LG인화원에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매년 1월 초 그룹의 새로운 경영전략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구 회장을 비롯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 그룹 내 40여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총집결했다. 올해엔 ‘시장 선도를 위한 LG만의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 구축’이라는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17일까지 이틀간 조별 토론을 벌인 뒤 발표를 통해 결과물을 공유한다. 매년 행사 첫 순서로 토론 주제에 맞는 강연자를 초빙, 특별 강연을 들어왔다.

올해엔 정 사장이 초대받았다. 정 사장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두 시간가량 이어진 강연에서 주로 현대카드만의 마케팅 기법과 브랜드 관리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다른 그룹 CEO를 강사로 부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돈이 좀 들더라도 혁신적 마케팅으로 우량 회원을 끌어들여 재무적 안정성을 높일 수 있었다”며 “결국 훌륭한 마케팅은 리스크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2001년만 해도 신용카드 시장 점유율이 1.8%에 불과했으나 독특한 상품과 마케팅으로 8년 만에 10% 이상의 점유율로 카드업계 2위로 발돋움했다.

정 사장은 역발상 전략도 소개했다. 그는 “전체 카드사들이 ‘모든 고객을 위한 하나의 카드’라는 전략을 들고 나올 때 우리는 반대로 고객군을 촘촘히 나눠 여러 카드를 개발했다”며 “그래서 카드 포트폴리오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8~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 전시회 ‘CES 2013’에 다녀온 소감도 들려줬다. 처음 CES를 둘러본 정 사장은 “LG전자 부스를 가 보니 정말 잘 꾸며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LG전자를 비롯한 한국 업체들이 일본 소니 등을 누르고 CES의 주인공이 된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치켜세웠다.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기술을 갖고 있다고 보여주는 건 좋지만 정말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술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 사장은 CES 후기에서도 ‘기술 과잉’에 대해 지적했다.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엔지니어들이 설명하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고 열정적으로 설명한다”며 “그런데 굳이 왜 필요한지, 정말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고 썼다.

제품 디자인과 회사 지향점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점도 전달했다. 정 사장은 “CES에서 다시 확인한 점은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디자인은 힘이 없다는 것”이라며 “회사의 지향점을 표현하는 디자인이어야 하며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회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먼저 정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의 강의를 들은 한 LG CEO는 “독특한 제품과 디자인, 마케팅이 결국 기업의 지향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조직에 적잖은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구 회장도 정 사장의 강의 내용에 깊이 공감하며 강연 뒤 정 사장을 따로 만나 10분간 대화를 나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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