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보호 명분있어도 행정은 법에 따라야"

입력 2013-01-17 17:05   수정 2013-01-18 05:55

유통업체와 인허가 갈등…他지자체에 영향 클 듯


“법을 준수할 의무와 책임이 누구보다 중한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이 골목 상권 보호와 같은 (명문이 있다고 주장하는)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법을 위반한다면 죄질이나 책임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울산지방법원 제1형사단독 김낙형 판사가 17일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것은 전국 각지의 비슷한 행정소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판결에서 법원이 중시한 것은 지자체장들이 대외적으로 명분이 있다고 판단한 현장행정이라도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봇물처럼 터진 선출직 공직자들의 인기 영합적 행정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영세상인 보호를 이유로 현행법을 위반하며 대형마트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법원은 “코스트코 허가 반려는 구청장의 재량권에 속하지 않는다”며 1000만원 벌금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선출직의 지자체 장이라 해도 행정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 구청장은 지난해 8월부터 열린 공판에서 “대형 할인매장이 몰려 있는 북구에 또다시 할인매장이 건립되면 중소상인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며 “건축 허가 여부는 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판사는 “윤 청장이 목적 달성을 위한 다른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하지 아니한 채, 거듭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을 무시하면서까지 법을 위반한다면 구민이나 나아가 국민들에게 법질서의 준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어떤 이유에서도 구청장의 재량권이 현행법을 초월할 수 없음을 분명히 못박았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대형마트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아 기소된 자치단체장에 대한 첫 재판이라는 점에서 중소 영세상인과 골목 상권 보호를 놓고 대형마트 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전국 다른 지자체의 인허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윤 구청장이 법정에 서게 된 이유는 2010년 8월 이후 1년여 동안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 대형마트 건축허가를 수차례 불허했기 때문이다. 윤 구청장은 ‘영세상인과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북구 진장유통단지 내에 세 차례나 들어온 코스트코 건축 허가를 모두 반려하고, 이후 울산시 행정심판위원회가 내린 두 차례의 코스트코 건축허가 명령도 모두 거부했다.

이에 코스트코 건축허가 신청을 한 진장유통단지협동조합은 2011년 8월 윤 구청장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소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12월4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법적인 귀속력을 가진 행정심판위원회가 두 차례 ‘건축허가반려 취소 명령’을 내렸는데도 따르지 않은 것은 직권을 남용해 고소인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이라며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지난 9일 진장유통단지협동조합 측이 윤 구청장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고, 국회의원 116명이 서명한 탄원서와 주민서명지가 법원에 전달된 점을 감안해 1심 공판에서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윤 청장이 만약 금고형 이상의 형을 확정 판결받게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진장유통조합 측은 윤 구청장에 대한 형사 고소와는 별도로 윤 구청장과 북구청을 상대로 10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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