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부 기능조정, 서두르면 또 실패한다

입력 2013-01-17 17:07   수정 2013-01-17 22:19

조직개편 완성할 '기능조정' 중요…대통령 취임전 마무리 욕심 금물
인수위, 핵심 숙성과제만 다뤄야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15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요최소한의 제한적인, 언뜻 ‘환원’ ‘정상화’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보수적인 개편안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새 정부의 국정수행 방향과 틀을 미루어 보는 것은 무리다. 부·처·청 수준의 조직개편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들, 즉 기능조정 제2라운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발표된 부·처·청 사이 세부적인 기능배분 내용이 구체화돼야 하고, 청와대 조직 개편, 중앙수사부 폐지 등 검찰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금융감독체제 개편, 중앙정부·기관 간 및 중앙·지방자치단체 간 정책조정 체계, 자치분권화의 추진 등 정부 기능을 어떻게 조정, 개편할 것인지가 정해져야 한다. 고위공무원 감축과 경찰, 소방, 방재, 교육 분야 집행인력의 확충, 일하는 방식의 개선 방안 등도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기능 조정 제2라운드가 국민에겐 훨씬 더 첨예한 관심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할 1월 임시국회 등 대통령 취임식까지 빠듯한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인수위가 서둘러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은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인수위나 당선인의 보좌·참모진이 이 방대한 과제들을 대통령직 인수 단계에서 마무리지을 수 있을 만큼 준비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왠지 불안하다. 필요최소한의 조직개편이라는 데도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경제부총리 신설로 상징되는 성장동력 위주의 경제논리에 밀려 교육, 노동, 문화의 비중이 약화됐다거나 경제위기 관리라는 명분 아래 대선공약으로 정책선점 효과를 거둔 경제민주화의 대의가 물 건너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새 정부의 지향 목표나 역할, 기능에 대한 당선인의 철학이나 입장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문도 제기된다. 때문에 정부 기능조정 제2라운드 역시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많은 문제들은 벌써 오래된 논란거리들이며, 충분한 준비와 여론 수렴이 요구되는 사안들이다.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처럼 인수위는 충분히 준비돼 있을까.

이 모든 부담과 불확실성은 대통령 취임 전에 조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일정상 제약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 임기 개시 전에 행정부 구성을 마무리해야 하고 국무회의 등 각종 정부조직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제를 새 정부 출범 전 이른바 ‘허니문’ 기간에 처리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려면 미리 충분한 숙의기간을 거쳤어야 한다. 대선 기간은 물론 그 이전에라도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면 당선과 함께 공약의 엄호를 받아 숙성된 해법들을 제시하고 추진할 수 있는 명분과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은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회적 숙의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공약을 잘 모르거나 들어 본 일이 있어도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에 의견수렴과 공론화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왜 그러는 걸까. 왜 매번 이렇게 짧은 인수기간 동안 정부조직도 개편하고 굵직굵직한 정책 이슈뿐 아니라 어쩌면 소소한 문제들까지 인수위에서 처리한다고 부산을 떨다가 결국 이런 저런 오류를 범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에서 내건 정부조직 개편의 핵심 명분들은 이번 조직개편안에서 거의 모두 환원된 셈이다. 가령 정보화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각 분야로 스며들어 융·복합화하므로 굳이 정부가 나서서 선도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정보통신부를 폐지했지만, 그런 상황판단은 빗나갔다. 때문에 임기 내내 컨트롤 타워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정통부 폐지가 가장 잘못된 정책으로 손꼽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이 너무 많아도 또 서두르면 실수가 생긴다. 어차피 예비내각이 아니라면 차라리 일을 줄여야 한다. 인수위는 새 정부를 출범시키고 임기 5년의 로드맵을 작성하는 데 집중하고 일의 경중과 정책의 숙성 등을 따져 가능한 범위에서 기능조정, 검찰개혁 등 핵심 과제만을 다루는 게 낫다. 각 부처 업무보고가 마무리된 시점에 인수위가 할 일과 새 정부가 이어받아 결정할 일들을 가려 정부 3.0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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