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重 4년만의 일감…'정치 투쟁'에 날릴 판

입력 2013-01-17 17:18   수정 2013-01-18 03:34

인사이드 Story - 유럽 선사들 21일 방문…노사 갈등 영도조선소 어쩌나

작년에도 수주 놓쳤는데
한달째 천막 농성 '시끌'…정치인 방문도 잇달아

회사는 대규모 증자
유급 휴직자만 400여명…사실상 빚내서 임금 지급




“다음주 월요일(21일) 발주 의사를 보이고 있는 유럽 선사 관계자들이 또 방문하는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농성으로 시끄러운 영도조선소를 보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4년여 만의 첫 수주가 무산될 수도 있어 속을 태우고 있습니다.”(한진중공업 영업 담당자)

2008년 9월 이후 단 한 척의 상선(商船) 일감도 따내지 못해 근로자들을 놀리고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이 수주 직전까지 와 있는 계약을 놓칠 위기에 놓였다. 지난달 21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소속인 최강서 씨가 자살한 이후 ‘내우외환’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금속노조지회 소속 조합원들은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회사 측이 제기한 158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 철회 등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5일 시민단체의 ‘시위버스’가 1년5개월 만에 다시 등장하고, 정치인들의 방문이 잇따르는 등 영도조선소는 ‘정치 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정리해고를 당했다가 가까스로 복직한 노조원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투쟁이 일감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데, 이번 수주까지 깨지면 모두 자멸할 수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 유럽 선사가 ‘가뭄의 단비’처럼 한진중공업에 해양지원선을 발주할 의향을 전해온 건 지난해 말. 임직원들은 4년여 만의 첫 수주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영도조선소를 찾은 선사 관계자들은 사정을 보고 크게 실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농성 등으로 과연 배를 제대로 만들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며 “2011년 상반기에도 계약 직전까지 갔던 컨테이너선 4척 수주가 무산된 적이 있다”고 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6일엔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자본금 2414억원의 75%에 이르는 대규모 증자다. 장기간 수주를 못한데다가 유급 휴직자에게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등 인건비 부담으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탓이다.

사정이 급박해지자 노조도 사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단체교섭권을 가진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은 지난 14일 쟁점이 되고 있는 금속노조 지회에 대한 회사 측의 손해배상 청구 문제를 올해 임금인상 교섭안에 포함시켜 조속히 매듭짓겠다는 성명을 냈다. 김상욱 노조위원장은 “금속노조 지회에 정치 투쟁 대신 노조끼리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지만 ‘정치권에서 해결해줄 것이니 개입하지 말라’는 답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2011년 11월 말 벌크선 2척을 선주에게 인도한 뒤 일감이 바닥나 정리해고와 유급휴직을 했다가 정치·사회적 논란에 휘말렸다. 결국 국회 청문회 등 정치권 압박에 밀려 지난해 11월 정리해고자 92명을 전원 복직시켰다. 이들은 대부분 복직하자마자 유급휴직을 하고 있다.

전체 조합원(750여명)의 절반인 400여명가량이 일이 없어 쉬고 있다. 유급휴직자에게는 월평균 220만원의 임금을 지급한다. 연 1200만원의 의료비와 자녀 2명의 대학까지 학자금, 기타 경조비와 명절 선물 등 근무 직원과 똑같은 복리후생 혜택도 주고 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복리후생을 빼고 유급휴직자의 임금 부담만 연 130억원가량 된다”며 “회사가 빚을 내서 비용을 대고 있다”고 했다.

서욱진/부산=김태현 기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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