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2020년의 삼성, 어디로 갈까

입력 2013-01-18 13:25   수정 2013-01-18 16:21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7년 '샌드위치론'(앞서가는 일본과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 낌)을 제기한 지 6년 만에 삼성 안팎에서 '제2의 샌드위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활을 건 일본의 반격과 추격 속도를 높인 중국 사이에서 생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지난해 연 매출 200조 원의 최대 실적을 냈지만 올해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일본 업체들은 '엔저'를 바탕으로 공세에 나섰다. 중국은 산업고도화를 통한 품질로 삼성을 따라오고 있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현주소와 10년 후 미래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① 살아나는 日 전자기업들 … 기습 반격 '깜짝'
② 中 추격 속도 빠르네 … 저가· 저사양 '옛말'
③ '10년 후 삼성' 이끌 오너십 이대로 괜찮나

2013년 1월16일 사장단회의가 열린 삼성전자 서초사옥. 동이 트기도 전인 아침 6시부터 그룹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임원들이 속속 출근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글로벌 가전 전시회 'CES2013'을 막 참관하고 돌아온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 신종균 사장은 여독이 풀리기도 전인 새벽부터 업무보고와 회의를 진행했다.

권 부회장은 출장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미국 현지에서 고객사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고 털어놨다. 신 사장은 오전 회의가 끝나자마자 "중요한 회의가 또 있어 가봐야 한다"며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새해 들어 삼성 내부에선 삼성전자가 지난해 거둔 경이적인 실적을 축하하는 잔치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일본의 기술력도 여전하다" 며 "이런 상황에선 10년 안에 삼성의 사업이 모두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 1년 사이 달라진 日 업체, 삼성 '긴장' 높아져

CES 이후 위기감이 더욱 짙어졌다. 한 해 전자업계의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 행사에서 일본과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일본 전자업계의 맏형 '소니'는 CES에서 4K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로 깜짝 반격에 나섰다. 4K는 고화질(HD) TV보다 해상도를 4배나 끌어올린 차세대 제품. 일본에선 4K, 한국에서는 울트라HD(UHD)로 불린다.

소니가 내놓은 새 제품은 해상도는 물론 삼성과 LG전자가 지난해 CES에서 선보인 55인치 OLED TV보다 화면이 1인치 더 큰 세계 최대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이 직접 나선 시연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업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파나소닉도 소니와 마찬가지로 56인치 4K OLED TV를 공개했다. 파나소닉이 OLED TV에서 채용한 방식은 일반적인 '증착'이 아닌 '인쇄' 기술로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사는 또 A3 크기와 맞먹는 20인치 4K 윈도8 태블릿PC를 내놓아 태블릿이 PC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샤프는 한발 더 나아가 4K보다 해상도를 2배 더 끌어올린 85인치 초대형 TV를 선보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실제 출시된 제품을 봐야 알겠지만 이론적으론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샤프는 이와 함께 최근 양산에 들어간 32인치 이그조(IGZO) LCD 모니터‘를 발표했다. 이그조는 산화물 반도체를 사용한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 기존 LCD와 비교해 화질이 개선되고, 전력 사용량은 80%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가 내놓은 신제품은 시제품에 불과하고 본격적인 양산 일정이 잡히지 않아 큰 위협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삼성전자도 지난해 55인치 OLED TV를 선보였지만 수율 문제로 1년 넘게 양산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TV 패널의 특성상 소니나 파나소닉이 이를 감당하기에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삼성과 LG전자가 독보적이었던 OLED TV 시장에 일본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CES를 보면 판세를 뒤집으려는 일본 업체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며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종전과 달라진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 아베노믹스 본격화 … 엔저 날개 단 日 기업 반격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책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 불황을 극복하고 엔고를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일본 기업에 치명적이었던 엔고를 탈피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현지 업체들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18일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90엔을 돌파해 2년7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모건스탠리는 "아베 정부가 들어선 후 엔화 약세가 놀라울 정도"라며 "올 1분기 말까지 95엔 선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지난 몇년 간 한국 기업에 진 이유가 기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 "환율전쟁에서 진 것이라고 보고 엔저를 바탕으로 한 역전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일본 업체들이 엔저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출 수 있단 점은 삼성에 위협 요인이다. 특히 패권다툼의 중심에 서 있는 TV 등은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신제품 출시 직후 평균 판매가 30% 가량 내려가는 것으로 알려졌고, 경기가 불황일수록 하락폭이 커진다.

한일경상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기동 계명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엔화 가치의 하락은 전자, 자동차 등 일본 완성품 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국내 기업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내 완성품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했지만 최종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소재 부품은 여전히 일본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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