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등급 中企에 돈 풀어라" 압박

입력 2013-01-18 16:54   수정 2013-01-19 03:17

금융당국, 시중銀 관계자 불러…"누가 책임지나" 볼멘소리

2008년에도 "만기연장" 지시…약속 안지키고 부실책임 물어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가 기본 업무인 금융당국이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출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경기가 그만큼 나쁘다고 판단한 것인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을 강조하는 데 따른 눈치보기인지 금융가의 해석이 분분하다.

추경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8일 오전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관계자와 시중은행 부행장, 정책금융기관 부기관장들을 불러 ‘중소기업 자금사정 및 대출 동향 점검회의’를 열었다. 사전에 예고하지 않은 비공개 행사였다.

회의에서 전달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추 부위원장은 “우량 기업만 지원하지 말고 비우량 기업을 많이 지원하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은행은 신용등급 B등급이나 BB등급 중소기업까지 주로 지원하는데, 일시적으로 상황이 나빠져 대출 부적격인 C등급으로 떨어진 업체들도 지원하라는 메시지였다”고 전했다. 다른 참석자도 “우량 중소기업에만 지원을 많이 하고, C등급 이하 기업은 여전히 자금이 모자란다, 기업에 대한 판단이 힘들면 신보 등 보증기관을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했다.

회의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금융당국은 “실물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은행이 과도한 리스크 관리와 소극적인 대출 태도를 유지하면 기업 경영이 나빠지고 은행의 영업 기반이 위축받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비 올 때 우산을 뺏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에 ‘비우량’ 중소기업까지 지원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처음이다. 그해 11월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을 모아 놓고 중소기업 대출 만기를 무조건 일괄 연장하라고 지시했다.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문서로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가 일시 진정되자 금융감독 당국은 약속과 달리 부실대출 책임자를 처벌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

은행들은 고민에 빠진 분위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자칫 하면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들을 조금씩 지원해서 질질 끌고 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무조건 중소기업을 살리자고 하다 보면 기업 구조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현 상황이 비우량 중소기업까지 억지로 대출을 해줘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인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엇갈린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당시에는 환율이 급등하고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기 때문에 일괄 만기 연장이 필요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며 “당국이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상은/김일규/장창민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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