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맨도 아니면서…", 1년 만에 제대로 사고친 CEO

입력 2013-01-19 14:27   수정 2013-01-20 15:23

"새 대표님은 어디 출신이세요? 네? 건축사사무소 대표요?"

지난해 3월 포스코가 한 계열사의 대표를 교체한다는 인사를 발표했다. 기자들은 해당 회사에 몇 번을 확인하고 되물었다. 포스코는 거대 기업 집단인만큼 계열사간의 자리이동도 활발한 편이다. 더군다나 대표 자리는 계열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非)포스코맨의 대표 임명은 그만큼 화제가 됐다.

건축물 설계 및 감리 전문업체인 포스코A&C의 이필훈 대표(58·사진)는 그렇게 포스코의 울타리안으로 들어왔다. 주말까지 꼬박 반납하고 10개월간 업무에 둘러 쌓여있다는 이 대표. 하지만 지난 18일 서울 역삼동 본사 사옥에서 만난 그에게는 지친기색 보다는 열정과 포부만이 느껴졌다.

"업무 파악하는 데만도 바쁠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신규사업까지 크게 벌였어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모듈러주택 사업은 공장도 없는데 수주부터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올해는 돈 좀 벌어볼까요? 하하." 그의 웃음이 헛되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포스코A&C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추진중인 모듈러 주택 사업은 지난 몇개월간 급속도로 사업을 불려왔다.

포스코A&C는 지난해 모듈러 해외사업 수주 강화를 위해 130억 원을 투입해 천안에 모듈러 공장을 지었다. 호주 서부 로이힐 광산 근로자가 거주할 숙소용으로 2000만 달러 규모의 모듈러 주택을 수출했다. 러시아 메첼그룹 근로자 숙소타운 건설 프로젝트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업비만 600만 달러다.

모듈러주택은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기본골조, 전기배선, 온돌 등)를 표준화·규격화해 공장 제작 후 현장에서 조립 설치하는 주택이다. 공업화 주택으로 공장에서 조립해서 만드는 집이라는 의미다. 이 집들을 레고 블록처럼 쌓아올리면 기존의 소형 오피스텔과 같은 건물의 형태도 가능하다. 장점은 공사기간이 짧고 유휴부지(노는 땅)에 쉽게 짓거나 철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철거된 주택은 다른 곳에 놓아져 집으로 활용될 수도 있고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새 집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모듈러주택이 아직은 초기단계라 비용이 싸지는 않은 편이거든요. 소형이긴 하지만 완벽한 집의 형태이기 때문에 공공부문에서 먼저 활용하는 예를 보여주면 좋죠. 건설현장이나 철거현장, 각종 수해현장 등에 가면 주거환경이 열악합니다. 콘테이너 박스나 천막 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됩니다. 모듈러주택을 활용하면 노동자들의 주거문제, 재건축·재개발시의 보상문제 등 사회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 대표의 이러한 생각은 현실화가 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고가도로 하부에 '초소형 모듈러주택'을 지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는 계획을 밝혔다. 시는 1인 가구용 소형 주택을 고가 하부의 미활용 공간에 모듈러주택으로 건립해 쪽방거주자, 홈리스 등의 주거시설로 제공할 예정이다. 올해 영등포고가 하부에 모듈러주택을 시범 적용하고 추가로 3곳의 대상지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모듈러주택이 보편화된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자국 내에서만 활용되는 내수산업입니다. 저희같이 지금 수출하는 업체는 특이한 축에 속하죠. 현재 모듈러주택은 4~5층 높이 정도 쌓는 수준인대요. 이보다 더 쌓을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사업이 확대된다면 모듈러주택을 재활용해서 아프리카의 분쟁지역이나 아이티와 같이 재해로 고통받는 곳에 기부도 하고 싶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말은 꺼내했지만, 이 대표는 집을 파는 장사꾼의 눈이 아니었다. 제대로 살 곳을 만들어주는 건축가의 눈빛이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이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명이다. 타임스퀘어, 휘닉스파크리조트, 연세대 송도캠퍼스 등 국내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제는 좀 편히 살라'며 대학강단에 서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 대표의 선택은 회사였다.

"저희 세대가 젊을 때에는 '내 이름 단 건축사사무소' 내는 게 꿈이었죠. 그런데 건축사사무소가 대형화되고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한 두명씩 대학강단으로 가더군요. 그 쪽이 좀 더 편한 걸 저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저는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 대표는 새건축사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젊은 건축가들을 끌어주고 발굴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밥 벌이도 제대로 못하는 젊은 건축가들에게 식사를 함께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대기업에 들어가라기 보다는 기회가 올테니 창의성을 잃지말라고 격려하곤 한다.

"대형 공사는 줄어들고 규모도 계속 축소될 겁니다. 그렇다고 건축에 대한 사람들의 눈높이는 낮아지지 않을 걸로 봅니다. 다시말해 일반인들이 수주하는 작은 설계 일들이 많아지고, 전체 시장은 다양화되고 커진다는 얘기죠. 동네 건축가부터 시작해서 창의적이고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젊은 건축가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까지 열심히 밥 사야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점심시간 즈음이었다. 그렇지만 연이은 회의에 시간이 촉박한 탓인지 이 대표는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젊은 건축가들의 고민을 나누고 집없는 사람들의 문제에 공감하는 그의 일상이었다.

◆이필훈 포스코A&C 대표 주요 프로필

△연세대 공대 건축공학과 , 동대산업대학원, 오하이호대학원(Ohio State Univ. Graduate School of Architecture (M.arch.)) △원도시 건축연구소, 태두종합건축사사무도 대표,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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