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주름진 남편의 눈가에 처음으로 굵은 물방울이 고였습니다. 담당 의사와 저, 그리고 남편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한참 흘렀습니다. 적막감을 깨고 남편이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살린다, 절대 먼저 안 보낸다.” 울먹이듯 잠겨버린 남편의 목소리가 제 귓전을 울렸습니다. 그의 어깨가 힘없이 떨렸습니다. ‘이제 나 없으면 누가 저 사람을 챙겨주나.’ 넉넉지 못한 살림을 책임지느라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경비 일을 하던 남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위 절제수술을 했습니다. 이어진 6개월의 항암 치료. 60년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길고 잔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덕분입니다. 고단한 직장 일을 마친 뒤에도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병원에 찾아와 새우잠을 자던 아들. “할머니 꼭 나아야 해”라며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손자들을 볼 때면 왜 그리 눈물부터 나던지.
긴 싸움을 벌이면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더군요. 제게 마지막까지 도움을 준 또하나의 힘은 바로 보험이었습니다. 큰 수술과 계속되는 항암 치료, 반복되는 입원, 그리고 가족들의 생활비 등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보험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불행은 막을 수 있습니다.” 미래의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든든한 댐을 지어야 한다던 컨설턴트의 말을 실감하는 데 꼬박 20년이 걸렸습니다. 보험은 암이라는 병마와 씨름하는 동안 제가 가질 수 있던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검사 결과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모든 항암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다시 찾은 날, 우리 부부와 진료 차트를 번갈아 보시던 의사의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투병생활은 저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따뜻해졌고 사람들의 장점도 더 많이 보게 됐습니다. 지금은 잘라냈던 머리카락도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남편과 가까운 숲에 갈 계획입니다. 다시 얻은 시간들을 더 아끼며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이 글은 2012년 삼성생명이 주최한 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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