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애써 일군 신용사회가 무너지는 소리들

입력 2013-01-20 17:01   수정 2013-01-20 21:32

서민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지원책이 속속 추진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국민행복기금 18조원을 상반기 중 조성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1년 이상 연체한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 48만명의 원리금을 50~70% 탕감해주고 나머지는 장기대출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또 대출 부적격인 C등급 비우량 중소기업에도 대출해주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새 정부가 국민행복을 화두로 내건 만큼 금융지원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고금리 다중 채무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의도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아무리 취약계층이라도 자기책임(손실분담)과 시장원리라는 대원칙에 어긋나선 안 된다. 최근 금융지원 확대를 틈 타 벌어지는 모럴해저드는 자칫 신용사회를 뿌리째 흔들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채무불이행자 빚 탕감부터가 그렇다. 연체한 원리금의 50%(기초수급자는 70%)를 탕감해준다니 온갖 대출브로커들이 기승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의 고리 대출을 알선하고 대출금의 30~50%까지 수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채무자도 안 갚고 버티면 원리금이 절반 이상 줄어드니 밑질 게 없는 장사다. 그동안 꼬박꼬박 갚아가던 사람들은 졸지에 바보가 됐다. 부실 중기 대출은 좀비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물귀신들이 될 것이 필지의 사실이다. 금융당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중기 대출 만기연장을 지시해놓고 나중에 은행에 부실책임을 추궁한 전력도 있다. 금융 정책도 신뢰는 없고 압력만 남았다.

퍼주기 금융지원의 부작용은 서민금융 현주소를 보면 알 수 있다. 신용보증재단이 대출금의 95%를 보증해주는 햇살론은 연체율이 9.6%로, 은행 등이 선별지원하는 새희망홀씨대출 연체율(2.4%)의 4배에 이른다. 손실 분담이 없는 정부의 금융지원책은 모두 ‘눈먼 돈’이 되고 만다. 이래서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쌓일리 만무하다. 한국 금융이 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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