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기 < 경상대 총장 skwon@gnu.ac.kr >
‘높은 대학 진학률과 교육낭비, 인력공급 과잉에 따른 노동시장에서의 미스매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비판이다. 한국 대학교육을 평가할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 비판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중등교육 보편화에 대한 유럽 지식인의 평가였다. 미국은 1830년대 매사추세츠주에 무상 초등학교를 설립한 이후 50여년 만인 19세기 후반 중등교육까지 무상 보편화를 이뤄낸다. 중등교육을 먼저 시작한 유럽이 여전히 소수 엘리트에게만 제공하던 교육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미국의 교육정책은 유럽인들에게 낭비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미국의 중등교육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이 승리하는 데 일조했고 미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국민소득 및 산업 구조, 중국 일본 등 주변 환경으로 판단할 때 한국은 산업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바뀌어야만 한다. 또 산업을 선도하는 것은 단순한 세계 1등 기술에 의한 제품이 아니라 인문학적 상상력과 감성에 기반한 융합기술 제품이라는 것은 많은 부분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대학교육 과잉에 대한 비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학교육의 질이 담보된다는 전제에서, 외국의 교육 전문가들 중에는 한국이 이런 탈바꿈을 하는 데 높은 대학 진학률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이들도 많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가 박근혜 정부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라는 것도 이견의 여지가 없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관련해 박정희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당시 대학 경쟁력 강화의 화두는 ‘지역’과 ‘특성화’였다. 반강제적인 구조조정과 지역 대학에 대한 강력한 특성화 지원으로 당시 지역의 거점 국립대학은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 수준으로 평가받았으며,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을 적시 공급했다는 평가다.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시의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따라서 첫째, 대학의 특성화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은 규모에 따라 잘할 수 있는 특성화 분야를 선택하고 정부는 그 분야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 둘째, 지역대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수도권의 일부 대학만을 집중 지원해서 얻을 수 있는 우리나라 전체의 대학 경쟁력은 저변이 부실한 사상누각과 같다. 인력공급 측면에서도 이른바 ‘중산층 대학’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대학교육 관련 업무의 일원화다. 최근 정부 조직개편 논의와 관련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들린다. 대학교육 관련 업무를 ‘재정지원 업무’와 ‘대학관리 업무’로 나눠 재정지원 업무는 다른 부처에서 담당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대학의 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의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대학정책과 연계 추진돼야 한다. 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R&D)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교육과정, 교수평가 등을 개선하는 ‘교육여건개선사업’, 교수가 수행하는 학문의 심층연구를 지원하는 등의 ‘학술진흥사업’ 등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밑거름을 주는 것이다. 이런 대학의 교육지원사업들을 교육을 담당하는 부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다른 과학기술부처로 이관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과학인재 양성과 관련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필요가 있다. 과학인재는 전 학문을 섭렵하는 ‘융합인재’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학문을 경험하고 인성과 윤리성을 갖춘 창의적인 융합인재 육성은 담당부처가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력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 논의가 이처럼 목적을 벗어나 대학업무 조정 논의까지 확대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조직 개편은 장기적인 국가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갖고 추진하는 것이어야 하며, 대학교육과 관련한 것이라면 더욱 대학교육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순기 < 경상대 총장 skwon@g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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