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논란 4대강, 운하 연결 안될까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parkstar@unitel.co.kr>
지난 10일로 지하철은 150년 역사를 갖게 됐다.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지하철 개통 이래 세계 지하철은 도시 최고의 대중교통으로 발전했다.
런던에서는 튜브(Tube)니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니 부르지만, 곳에 따라서는 육상과 지하를 넘나드는 노선도 많아 서브웨이(Subway) 대신 도시철도(Metro)나 전철이란 이름을 쓰기도 한다. 지하철 150주년을 계기로 미국 CNN은 세계의 우수 전철 9개를 꼽았는데, 서울이 대표적이다. 서울 지하철은 휴대전화와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철이며 TV와 에어컨 등이 설치돼 있다고도 소개했다.
그동안 나는 세계의 첫 지하철은 프랑스 파리의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런던 이후 지하철은 부다페스트(헝가리·1896), 빈(오스트리아·1898), 파리(1900), 그리고 보스턴(미국·1901), 베를린(독일·1902)으로 개통 순서가 밝혀져 있다. 1974년에서야 겨우 그 대열에 들어선 서울의 지하철이 세계에 우뚝 서게 됐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파리 지하철을 세계 최초로 오해했던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지하철의 4촌쯤 되는 하수도가 파리에서는 대단히 발달돼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는 요즘 뮤지컬과 영화 등으로 인기몰이 중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레 미제라블’(가련한 사람들·1862)을 들 수 있다. 워낙 장편이기도 하지만, 위고는 그의 소설에서 50페이지에 걸쳐 늘어지게 당시의 파리 하수도를 설명하고 있다. 나폴레옹 당시 파리 하수도 정비를 맡아 멋지게 이를 완성한 브뤼네소(1751~1819)의 이름이 소설에 등장할 지경이다. 하긴 이 소설을 집필할 때쯤인 1850년대에는 오스만(1809~1891)이 그 뒤를 이어 파리 하수도를 더 완벽하게 정비해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오늘날 파리에는 ‘하수도박물관’도 관광 명소가 돼 있다.
현재 파리의 하수도는 2100㎞의 총길이에 2만6000개의 맨홀 뚜껑, 그리고 지상의 번지에 상응하는 간단한 하수도 번지까지 갖춰 완벽한 구조를 자랑하고 있다. 바로 여기가 주인공 장발장이 코제트의 애인 마리우스를 업고 위험지역을 탈출한 파리의 하수도인 것이다. 1932년 6월 봉기에 실패한 젊은이들은 파리 거리에 그들의 민주화 꿈을 묻어야 했다. 장발장은 바로 그 피의 현장에서 총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업고 지하로 내려갔다. 파리 하수도는 이미 잘 정비돼 있을 때다. ‘레 미제라블’의 묘사처럼, “파리에는 땅 밑에 또 하나의 파리…즉 하수도의 파리가 있다. 거기에는 거리가 있고, 건널목도, 광장도, 그리고 막다른 골목도 있다.”
파리의 하수도는 위고의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유명한 뮤지컬로 세계를 휘젓고 다닌 ‘오페라의 유령’ 역시 그 원작은 1909년부터 이미 소설로 나온 가스통 르루(1868~1927)의 작품이다. 파리의 하수도가 아니었다면 작가는 주인공 유령의 작은 왕국을 어디 세울 수 있었을까. 그것이 어둠의 왕국이라면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소설 ‘푸코의 진자’(1988)에서 주인공을 통해 파리 하수도야말로 광명의 해방구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한 소설가가 ‘어둠의 왕국’이라 표현한 것을 다른 소설가는 ‘광명의 왕국’이라 뒤집은 셈이랄까.
땅위에 길을 만들어 소통을 넓혀온 인간은 그 범위를 하늘 위와 땅 아래에까지 확대해 왔다. 기술의 놀라운 발달과 함께 이런 추세는 날로 더 강화돼 소통의 수단은 더욱 다양하게 고도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해저터널로 이어질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고, 그다지 머지않은 날 우리 땅에는 4대강이 운하로 소통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4대강 부실공사가 말썽나고 있는 이즈음에 연상되는 대목이다.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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