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스콧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은행의존' 금융시스템은 위험
자본시장 사전 규제보다
철저한 사후 감독이 바람직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주택담보대출) 사태를 비롯해 모든 금융 위기는 기본적으로 은행들이 돈을 잘못 빌려줬다가 생긴 문제다.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때문이 아니다.”
금융규제 분야 권위자인 할 스콧(Hal S Scott)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사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선 자본시장 육성보다 규제나 소비자 보호 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라고 말하자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만난 스캇 교수는 “(주식·채권 등) 자본시장은 은행이 제 기능을 못할 때 실물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며 “다변화 측면에서라도 규제완화를 통한 자본시장 육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캇 교수는 정치중립적 연구 조직인 자본시장 규제위원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이 이 위원회의 공동의장이다.
스캇 교수는 “과도한 금융규제 완화가 금융위기를 일으켰다는 주장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이 생기고 이것이 붕괴되는 과정에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저금리 정책, 은행들의 부실한 대출 심사,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 등 수많은 원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데도 금융규제 완화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단순히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정치적 쇼”라고 지적했다.
스캇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의 규제 강화도 비판했다. 특히 투자은행의 자기자본거래(프롭트레이딩)를 금지한 ‘볼커룰’은 “완전히 정치적인 법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2009년 재무부 백서에서 처음 볼커룰의 필요성을 언급한 로렌스 서머스 당시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현 하버드대 교수)은 1999년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글래스-스티걸법(1933년 대공황 당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엄격히 구분한 법)을 폐지, 금융규제 완화를 주도했던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볼커룰을 실행에 옮기려면 시장조성(고객들의 사자 주문과 팔자 주문 사이에서 가격을 조정하며 시장을 형성하는 것)과 프롭트레이딩(시장조성 과정에 자기자본을 얹어 자사의 트레이딩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데 그런 선을 긋기란 불가능하다”며 실행 가능성을 낮게 봤다.
스캇 교수는 또 “최선은 어떤 투자가 좋고 어떤 건 나쁘다고 정해주는 200쪽 짜리 규정집을 만드는 것(사전규제)이 아니라 사후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할 수 있는 것을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캇 교수는 “금융위기로 규제가 강화된 이후에도 미국 금융회사들은 한국 금융회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며 “한국도 세계적인 금융 플레이어를 육성하고 싶다면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캇 교수는 “발달된 자본시장의 장점은 은행에 문제가 발생해도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캇 교수는 “은행은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하면 스스로 리스크를 떠안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수많은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분산해 감수한다”며 “만약 한국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대형 은행들이 모두 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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