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박근혜, 가난 그리고 꿈

입력 2013-01-23 16:57   수정 2013-01-24 07:10

김용준 경제부 차장 junyk@hankyung.com


‘앵두나무 처녀’란 노래가 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한 전직 관료는 “이 노래에 한국의 산업화 과정이 담겨 있다”고 했다.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 봤다. 실제 그랬다. 이 처녀들이 향한 곳은 서울이었다. 그곳에 가면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무작정 상경했다. 노랫말 그대로 복돌이도, 삼용이도 덩달아 짐을 쌌다. 수많은 ‘금순이’와 ‘복돌이’는 산업화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중산층으로 올라섰다.

일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먹고 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역동적 사회였다. 존 F 케네디는 “성장의 파도가 모든 배를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한국의 1970~1990년대와 딱 들어맞는 얘기다.

"잘살아 보세" 세상을 바꾸다

가난 외에 이들을 움직인 것은 또 있다. 국가의 정책이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갈 길을 제시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슬로건이 등장한다. “잘살아 보세.” 이 속에는 국민의 강력한 여망, 즉 시대정신이 담겨 있었다. 가야 할 목표도 분명히 제시했다. 그리고 국민들을 움직였다. 그 결과는 ‘한강의 기적’이었다. 정치 컨설턴트들이 ‘최고의 슬로건’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이 구호는 한국인의 DNA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시기하는 DNA’, ‘남이 하면 나도 한다’는 ‘평등주의적 기질’, 특유의 근면성 등과 결합했다. 국가와 국민이 통째로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국민들은 악착같았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는 노동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아들은 공부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꿨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이뤘다. ‘입지전적(立志傳的)’이라는 말이 허다하게 등장했다. ‘가난은 성공의 스펙’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언제부터인지는 신문에서 ‘입지전적’이라는 말을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푸념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난의 대물림’이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라는 말도 들린다. 서울 상위권 대학 입학자 가운데 ‘강남 3구’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과거 신분 상승의 통로가 됐던 교육이 사실상 그 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역동성 잃은 대한민국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을 듣기 어렵게 된 이유다. 이제 과거 교육의 역할을 ‘슈퍼스타 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차지했다고 하면 과언일까. 의지와 노력, 자질만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한국 경제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한달쯤 뒤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로 만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묘한 일이다. 그의 자식에게도 비슷한 숙제가 주어진 셈이다. 많은 가난한 유권자들이 그에게 표를 던진 이유도 아버지가 이뤄낸 업적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당선인도 이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중산층을 복원하고 꿈이 이뤄지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중산층 붕괴를 한국보다 앞서 겪은 선진국 가운데 중산층 복원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수위원회에서는 연일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박 당선인과 그의 참모들은 국민들과 한 이 소중한 약속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김용준 경제부 차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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