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국가 붕괴 이후 최근 몇 년처럼 성장과 분배의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극심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이는 결국 경제학의 두 가지 잣대인 효율성과 형평성의 충돌이라 볼 수 있다. 효율성이 경제 전체적으로 달성될 때 경제의 ‘성장’으로 구현될 것이고, 형평성은 소득과 부의 ‘분배’로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네 번째 경제학톡에서는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모건스탠리의 신흥시장 투자 책임자 샤르마(R. Sharma)는 그가 쓴 책 ‘브레이크아웃 네이션(Breakout Nations)’에서 우리나라를 성장의 ‘금메달’로 꼽았다. 최근 50년 동안 연간 5% 이상 성장한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와 대만뿐인데, 최첨단 제조업의 글로벌 브랜드들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진정한 승자라고 분석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 했고,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최근 출판돼 주목받고 있는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 공저)’는 좋은 제도(institution)를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제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노갈레스란 도시가 등장한다. 노갈레스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의해 반으로 갈린 도시인데, 양쪽의 노갈레스는 자연적 문화적 민족적으로 완벽히 같지만 제도의 차이로 3배 이상 소득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성장을 견인하는 제도의 핵심은 법질서를 확립하고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공정한 경쟁이 벌어지도록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성장의 금메달로까지 꼽히게 된 근본 원인이 좋은 제도를 확립했기 때문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이 책에서도 북한에 비해 제도의 승자로 거론됐다.
제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법질서 확립과 재산권 보호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여야 할 것인지 새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과거의 고도 성장기와 달리 이미 경제가 성숙단계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는 제도 역시 성숙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법질서 확립과 재산권 보호는 법제도를 자주 바꾸지 않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 어려운 상황까지 두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때도 법을 바꾸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법의 적용이 미흡하지 않은가 살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활동과 관련된 법제도가 자주 바뀌는 것만큼 경제활동에 불안감을 일으키는 요인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열심히 일할 유인이 있는 제도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제도를 ‘복불복’으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는지.
경제 성장을 위해 법질서를 확립하고 재산권을 보호하라는 해법이 맞는다면 진짜 걱정은 그것이 정치적으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노갈레스도, 남북한도 수십년에 걸쳐 제도 차이의 결과가 드러났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바꾸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은 정치인들 중에 단기에 생색나지 않는, 너무나 당연한 듯한 밋밋한 이 해법을 누가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 지금부터라도 살펴봐야겠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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