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베를린’에서 완성된 류승완 감독의 액션 내러티브

입력 2013-01-24 14:23  


[이정현 기자] 류승완 감독의 별명은 ‘액션키드’다.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데뷔한 류 감독은 ‘다찌마와리’(2000)와 ‘피와 눈물도 없이’(2002),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짝패’(2006)등의 작품을 통해 리얼 액션물에 장기를 보여왔다. 하지만 스토리메이킹 능력에는 항상 물음표가 따른 것도 사실. 그런 그가 신작 ‘베를린’을 내놓았다. 이 영화에서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마지막 껍질을 깰 수 있었을까?

1월21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베를린’은 첩보 액션물이다. 국제적 음모가 숨겨진 도시 베를린을 배경으로 권력 투쟁중인 북한 비밀요원들과 이들을 뒤쫓는 한국 국정원 요원의 대결을 그린 이 영화는 100억원이 넘는 자본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다. 전작 ‘부당거래’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등 호화 캐스팅으로 공개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리얼 액션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류승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차가운 도시 베를린을 형상화한 오프닝 시퀀스를 지나 곧바로 이어지는 거친 총격 액션,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난투극과 추격전은 금방 관객을 사로잡는다. 액션 난이도와 호흡, 완성도에서 한국영화 최고 수준으로 꼽을 만 하다.

흔히 ‘베를린’을 놓고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본 시리즈’를 거론하곤 한다. 액션의 퀄리티 부분에 있어서 ‘베를린’은 ‘본 시리즈’와 비견될만하다. 다만 폴 그린그래스가 촬영과 편집의 힘에 기댔다면 류승완의 액션은 좀 더 아날로그에 가깝다. 그리고 더 정직하다. 관객의 눈을 속이는 화려함보다 액션 자체에 힘을 줬다. ‘본 시리즈’와 ‘베를린’은 액션의 성취에 비견될 뿐 같은 노선을 달리는 영화는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이야기를 전작인 ‘부당거래’(2010)에서 털어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성과는 온전히 류 감독만의 것은 아니다. ‘부당거래’는 ‘신세계’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이 각본을 담당했으며 류 감독은 공동 각색에 참여했다.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부당거래’에서 이야기의 맛을 알아챈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토리메이킹을 완성했다. 액션이다.

사실 ‘베를린’은 이야기가 탄탄한 영화는 아니다. 치밀함이 요구되는 첩보영화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그렇지만 류승완 감독의 장점으로 이를 타개했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액션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 정신없이 휘몰아쳐서도, 고난이도 액션을 펼쳐서도 아니다. ‘베를린’ 속 액션과 액션의 연계성에서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12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몰입도를 가졌다.


류승완 감독의 액션 내러티브가 완성되기 위해 주연배우들의 공이, 그리고 이를 진두지휘했던 정두홍 무술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공이 크다. 북한 최정예 비밀요원 표종성을 연기한 하정우는 맨몸으로 부딪치는 리얼 액션의 맛을 잘 살렸다. 영화 곳곳에 그의 고생스러움이 녹아있다. 상대적으로 빛을 받기 어렵지만 “‘남극의 눈물’ 펭귄들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마지막 감정신도 인상적이다.

하정우에 맞서는 국정원 요원 정진수를 연기한 한석규의 복귀가 반갑다. ‘쉬리’ ‘이중간첩’에 이어 또다시 첩보물에 출연한 그의 모습에서 노련한 비밀요원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음모의 중심이 되는 동명수의 류승범도 인상깊다. 차가운 표정 속에 계속해서 드러나는 그의 광기는 ‘베를린’의 중요한 축이다. ‘도둑들’에서 발랄한 여도둑 ‘예니콜’로 분했던 전지현의 변신도 놓칠 수 없다.

독일 베를린과 라트비아 리가를 오가며 촬영된 로케이션과 액션의 배경이 된 공간을 완성한 미술도 지켜볼만하다. 라트비아 리가의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카체이싱 장면은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장면이자 미술과 액션, 배우의 연기가 합쳐져 탄생된 명장면이다.

류승완 감독은 최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떨어 본 적이 없다. 이게 뭐라고 (관객들이) 기대하는지 모르겠다”고 긴장된 심정을 표현했다. 떨어도 된다.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액션으로 껍질을 깼다. 눈 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는데 떠는 것 쯤이야. 액션에 대한 류 감독의 열정이 ‘베를린’에서 결실을 맺었다. 러닝타임 120분. 15세 관람가. 1월31일 개봉.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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