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서 서방과 연합전선 펼듯
중국이 일본의 엔저(엔화 가치 하락) 정책 비판에 가세했다. 일본은 물론 세계 경제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내심 위안화 가치 절상과 수출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다음달 중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중국이 독일 영국 미국 등 서방과 함께 엔저 저지를 위한 공동 전선을 펼 가능성이 커졌다.
○엔저로 통화전쟁 우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4일 사설을 통해 “돈을 (무제한) 찍어내겠다는 일본의 결정은 매우 위험하다”며 “주변국들의 반발로 인해 글로벌 통화전쟁이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화통신은 “각국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면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고 글로벌 협조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자산 버블이 발생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제한적인 변동환율제를 채택,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환율정책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자제해왔다. 중국이 이례적으로 관영 언론을 내세워 엔저 정책에 대한 비판에 나선 것은 위안화 가치 상승과 이로 인한 중국 기업의 수출 악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화통신은 “일본은 과거 10여차례 양적완화를 실행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정부 부채 비율만 국내총생산(GDP)의 2배 이상으로 높아졌다”며 “양적완화는 결국 정부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려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 경제가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며, 구조적 개혁과 재정 안정으로 경제를 치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연 3~4% 위안화 예금으로 돈 몰려
최근 홍콩에서는 엔저 현상으로 위안화 수요가 급증해 위안화 절상 요인이 되고 있다고 중국 신문인 21세기경제보도가 이날 전했다. 엔화를 팔아 위안화를 사들인 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위안화 예금 등을 통해 수익을 내는 거래가 폭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2년물 국채 수익률은 최근 6년 만에 최저치인 연 0.08%까지 떨어졌다. 반면 홍콩에서 위안화 예금 금리는 연 3~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금리차를 이용한 거래의 수익률은 통화가치 변동수익까지 포함해 연 13%나 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실제 홍콩에 투자된 글로벌 자금 중 위안화 자산을 사들인 자금의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말 16%에서 4분기 말 22%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엔화 가치는 위안당 12.5엔에서 14.5엔으로 떨어졌다.
엔화 가치 하락은 중국의 대일본 교역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본의 최대 무역거래국으로 일본 전체 교역액의 21%를 차지한다. 장지펑(張季風) 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주임은 “엔저로 중국이 가전과 철강 분야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유민주당 총재로 취임한 이후 위안화는 엔화에 대해 16%나 평가절상됐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이 금리를 내리거나 위안화 가치 절하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를 기록하는 등 2개월 연속 오르자 올해 신중한 통화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했다. 자오칭밍(趙慶明) 국제금융전문가는 “일본의 엔저 공세에 중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엔저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이날 일본발 통화전쟁의 최대 피해자로 한국을 지목했다.
WSJ는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지난해 초 이후 26% 이상 상승했다”며 “이로 인해 한국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책을 발표하는 등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엔화 가치가 1% 떨어지면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1.1%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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