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공약의 딜레마…반드시 지켜야 할까?

입력 2013-01-25 09:52  


민주주의는 가끔 체제 우월성 여부를 놓고 토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가장 합리적인 정치 형태는 민주주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타락한 민주주의에 실망한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현명한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철인(哲人) 정치’를 주장했고, 그의 철학적 후계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계층이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중산정치(中産政治)’를 외쳤다.

하지만 250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허점 많던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해졌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채택했던 모든 제도를 제외하면 최악의 정치 체제”라는 윈스턴 처칠의 하원 연설(1947년)은 민주주의 체제 우월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해준다.

철학의 원조라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민주주의에 회의적 시선을 보냈을까. 한마디로 민주주의라는 체제에 살고 있는 대중의 판단력을 불신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어리석음, 즉 중우(衆愚)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반대로 유권자의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으로 민주주의 토대가 더 단단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약(公約)은 정부나 정당, 공직 후보자 등이 어떤 사안에 대해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또한 공약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나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선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흔드는 핵심 카드다. 유권자들은 인품이나 리더십, 공약 등을 평가해 후보자를 결정한다. 공약의 판단에는 이따금 공익과 사익이 충돌한다. 전반적인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특정 집단의 이익엔 부합하는 공약들도 많다. 중우는 이런 선택적 상황에서 대중들이 사익에만 매몰됨을 경계한 말이다.

후보자들은 선거 때마다 공약들을 쏟아낸다. 그들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공약’(空約)임을 알면서도 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약속 이행’이라는 유혹적 수사를 덧씌워 유권자의 이성을 테스트한다. 선거가 과열되면 공약은 더 부풀려진다. 이러다 보니 누가 당선되든 ‘공약 이행 딜레마’에 빠진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새누리당에서 벌써 공약 수정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곳간이 비어 있으면 아무리 명분이 그럴싸한 공약이라도 실천에 옮기기 어렵다.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무작정 세금을 올리는 것 역시 국가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본 국가의 곳간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공약 실천의 수위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리더십이다. 공약을 위한 정치보다는 국가를 위한 정치가 먼저다. 4, 5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공약과 공약 딜레마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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