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 티백 앞세워 가정용 원두커피 대중화…블루오션 개척한 '잔다르크'

입력 2013-01-25 16:37   수정 2013-01-25 22:34

기업&기업人 - 파워기업인 생생토크 한국맥널티 이은정 사장

믹스커피 판친 90년대…투명 지퍼백 등 개발…시장 점유율 23%, 1위
소화 잘되는 커피 꿈꿔…제품 다각화…中 등 수출




“제품에 문제가 있어요. 커피 원두가 물에 녹지를 않아요.”

20여년 전 가정용 원두커피업체 한국맥널티엔 이 같은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쏟아졌다.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마시듯 원두를 물에 넣고 저어 마신 고객들의 항의 전화였다. 커피 원두를 분쇄하고 필터를 통해 내려 마셔야 한다는 걸 잘 몰랐던 것. 당시엔 카페에서 원두커피를 마시는 이들도 많지 않았고 가정에서 이를 즐기는 경우는 더욱 적었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가정용 원두커피를 수입·판매해 온 이은정 한국맥널티 사장(49)은 고민에 빠졌다. 소비자들이 가정용 원두커피를 생소하게 느낀다면 사업 전망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사장은 가정용 원두커피를 대중화하는 방법에 대해 묘수풀이에 나섰다.

우선 원두커피를 믹스커피처럼 간단히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가정에서 쉽게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녹차나 홍차처럼 뜨거운 물만 있으면 우려 먹을 수 있는 삼각형 원두커피 티백을 만든 것. 일반 티백에 비해 향이 진하게 우러나와 원두커피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고객들의 잠재 니즈를 파악하는 데 앞장섰다. 구매 전 직접 원두를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뒷면이 투명한 지퍼백을 개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96년 처음으로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점, 청량리점에 입점한 데 이어 석 달 만에 이 백화점 내 커피매출 1위를 기록했다. 이 사장은 “항상 ‘내가 고객이라면’이란 생각을 한다”며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소비자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국맥널티는 현재 국내 대형마트,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가정용 원두커피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점유율은 23%에 달한다. ‘맥심’으로 인스턴트 믹스커피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동서식품도 가정용 원두커피 시장에선 한국맥널티에 밀려 2위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맥널티의 지난해 매출은 150억원을 기록했다. 1994년 설립 당시 직원은 세 명에 불과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90명에 이른다.

이 사장은 커피의 불모지라 여겨지던 우리나라에 원두커피 문화를 확산시킨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또 젊은 여성들이 닮고 싶어하는 여성 벤처인으로 꼽힌다. 다른 여성 기업의 경우 평균 6~10년 만에 문을 닫지만 그는 스물여덟 살이란 젊은 나이에 창업전선에 뛰어든 뒤 20년간 회사를 꾸준히 성장시켜 왔다. 그는 한국여성벤처협회 차기 회장으로 추대돼 오는 30일 취임한다.

이 사장은 성장 키워드로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꼽는다. 1988년 홍익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3년간 식품회사에서 무역 관련 일을 하다 돌연 사표를 냈다. 일본에서 ‘도토루’ 같은 저렴한 셀프서비스 카페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직접 카페를 운영하기로 한 것. 하지만 이들과는 차별화한 전략을 펼쳤다. 그는 과감하게 잔당 3000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원두커피 카페를 열었다. 이는 좋은 반응을 얻어 서울 불광동 등 시내에 30여개 가맹점을 둔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단순한 ‘장사’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신혼부부 등에게 커피메이커를 선물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가정용 원두커피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 것. 이 사장은 1994년부터 미국맥널티에서 커피 원두를 수입, 유통매장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가격도 저렴하게 팩당 9000~2만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정에서 원두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데다 1997년 외환위기가 직격탄을 날렸다. 고환율 탓에 커피 원두를 100% 수입하는 방식으론 회사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었다. 미국맥널티에서 로스팅된 원두커피를 수입하지 않고 직접 원두를 구매해 국내에서 로스팅하기로 한 것. 원두커피 수입업자에서 제조업체로 회사 정체성을 확 바꾸기로 했다. 이어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한 뒤 1998년엔 충남 천안시 서북구에 1900평에 달하는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주변에서 걱정할 만큼 과감한 결정이었다”며 “하지만 보다 좋은 품질의 원두를 판매하고 다양한 제품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이 하루에 마시는 커피는 평균 10잔에 달한다. 현재 100여종이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더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서란다. 피할 수 없는 최고경영자(CEO)의 길이라고도 했다. 컵 윗부분에 다리 형태의 종이 지지대를 걸쳐놓고 물을 따르는 형식으로 드립커피의 맛을 살린 드립백, 작은 용기에 진한 농축액이 들어 있어 뜨거운 물에 넣는 순간 원두커피가 되는 포션커피 등도 이 같은 ‘자기 검증’의 결과로 탄생했다. 이 사장은 “커피를 마시며 항상 재미있는 발상을 한다”며 “소화가 잘 되거나 잠이 싹 달아나는 커피 등 여러 가지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가정용 원두커피 시장은 650억원 규모에 달한다”며 “앞으로 더욱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차별화된 제품을 끊임없이 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한국맥널티는 현재 러시아, 중국 등에 수출하고 있다. 이 사장은 “아직 수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국내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 진출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사업뿐만 아니라 앞으로 2년 동안 한국여성벤처협회장으로서 여성 벤처인 육성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그는 10년 동안 협회 이사, 부회장, 수석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벤처기업 3만개 중 여성 벤처기업은 7%인 2000여개에 불과하다”며 “논에 바로 볍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모판을 만들어 모가 자라면 이를 옮겨심는 것처럼 여성 벤처인들을 위한 모판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성장 단계별 맞춤 지원센터를 마련해 그들의 모판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여성 벤처인들이 경쟁력을 갖추면 그 폭발력은 굉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약 공장 인수해…두마리 토끼 잡는다

한국맥널티는 가정용 원두커피만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다. 제약사업도 함께하고 있다. 해열제 아스피린 식도염치료제 등을 제조해 광동제약 등 대형 제약사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1996년 한 제약업체의 공장을 사들인 것이 계기가 됐다. 이은정 사장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마침 해당 업체에서 기계 구매 등을 함께 요청해 왔다”며 “색다른 분야라 다소 망설이기도 했지만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고 설명했다.

커피사업과의 교차점도 찾아 적극 활용했다. 커피처럼 시럽을 정제하기도 하고 투명 커피 지퍼백과 같이 투명 시럽 용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수출길도 열렸다. 199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미국 시장에 어린이용 감기약 시럽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무모한 행동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약을 개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며 “현재 제약 부문 매출은 60억원 수준이지만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커피와 제약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100년 가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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