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 의결권은 달콤한 마약

입력 2013-01-25 16:45   수정 2013-01-26 07:21

국민연금이 동아제약의 회사 분할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회사를 지주사와 전문의약품 자회사로 쪼개고 박카스와 일반의약품 부문은 지주사 아래 비상장 자회사로 둔다는 분할안이 장기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며 오는 28일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것이다. 동아제약 3대 주주로 지분 9.5%를 가진 국민연금의 이 같은 방침은 앞으로 다른 기업의 의결권도 적극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 적잖은 우려를 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은 지난해 11월 기준 222개다. 삼성물산(9.68%) 호텔신라(9.48%) 제일모직(9.80%) 포스코(5.94%) 등은 최대 주주다.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는 2대 주주다. 의결권 행사 강화가 해당 기업들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 의사표시를 한 비율은 2008년 5.4%에서 지난해 17%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국민이 주인이지 정치권이나 정부의 쌈짓돈이 결코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걷는 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대리인인 셈이다. 그런 대리인이 국민에게 아무런 의사도 묻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건 말이 안된다. 소위 대리인 문제다.

자산운용과 주주 의결권은 전혀 별개 문제다. 기업가치가 훼손된다고 판단되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든지 해서 주식을 팔면 그만이다. 매집한 지분을 무기로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연금수익을 극대화한다는 보장도,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기업의 오너십을 부정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과로 이어지기 일쑤다. 국민연금이 두 차례나 정몽구 회장의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진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대차는 글로벌 성공기업이요, 정 회장은 그 회사의 세계적 CEO다. 이런 식이라면 머지않아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사실상 국유기업이 되고 만다.

기업 경영은 기업인들의 위험부담 행위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움직임은 연금사회주의적 발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에 간섭하고 싶어 안달 난 정치권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2060년이면 고갈이 예정돼 있다. 미국 연기금들과는 성격부터가 다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금단의 열매처럼 꿀맛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국민경제를 국유화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어떤 것이 개별기업의 가치를 높이는지 판단할 지력도 방법도 국민연금에는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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