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복지는 잠시 소나기를 피하는 처소여야

입력 2013-01-27 16:49   수정 2013-01-27 21:51

증세없이 복지공약 실현 불가능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에게 선별적 복지로 '실타래' 풀어야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dkcho@mju.ac.kr



‘탈무드 지혜’는 “남의 자비에 의존하느니 차라리 가난을 선택하라”고 가르친다. 가난을 미화하고 자비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일어서려는 노력을 먼저 기울이라는 가르침이다. 복지국가는 대장정이기에 그 기저에는 절제의 철학이 깔려 있어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의 복지에 대한 욕구와 기대는 ‘되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다. 복지는 국민의 당연한 청구권으로,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복지는 ‘다다익선’이 돼버렸다. 하지만 복지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어야 한다.

최근 복지에의 쏠림이 가속화된 데에는 복지지출에 대한 잘못된 통계 해석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복지지출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비교가 잘못된 것이다. ‘베버리지’식 복지정책을 펼치는 스웨덴은 조세로 모든 지출을 조달한다. 따라서 정부지출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비스마르크’식이다. 사회 보험료를 내고 급여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 지출만으로 OECD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복지지출과 더불어 각종 비과세 및 감면 등 ‘조세지출’을 포함시켜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복지실현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실현해야 한다. 성장이 ‘분배의 총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 ‘저성장의 구조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래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실질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 평균을 웃돈 것은 단 2년(2008, 2009년)에 불과하다. 2013년 우리의 성장률 추정치(3.0%) 역시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3.5%)보다 0.5%포인트 낮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추세적으로 성장률은 낮아진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이다. 2만달러 소득에서 ‘성장판’이 닫혀서는 안된다. 지금은 ‘긴 호흡’의 복지를 위해서라도 ‘성장페달’을 밟아야 할 때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 마련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일각에선 애초 추계보다 2배 이상의 재원이 드는 만큼 ‘출구전략’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당선인쪽은 “공약은 실행가능하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 당선인의 ‘약속의 정치’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재원 논쟁’은 무의미하다. 복지 혜택의 범위와 액수에 따라서 예산 추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 측이 주장하는 재원마련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5년간 소요재원 135조원 가운데 60%는 세출구조조정과 복지전달체계 개선을 통해 조달하고 나머지 40%는 각종 비과세 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수 확대로 조달한다는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의 자료를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하겠단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이른바 ‘증세 없는 재원조달’은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예측된다. 세출구조조정은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1년에 2조~3조원도 힘에 겹다. 비과세 및 감면은 상당부분 중상층과 서민층의 소득보전에 연계돼 있기 때문에 추가 세수확보가 쉽지 않다. 지하경제 양성화도 속 빈 강정이 되기 쉽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율은 사업 규모가 작을수록 높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전방위로 추진되면 영세업자가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목표는 투명성 제고에 둬야 한다. 세수 확대는 부차적이다.

결국 증세를 통한 고부담으로 가지 않고서 고복지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부가가치세는 29%, 법인세는 26%이다. 효율에 관계된 법인세율은 상대적으로 낮고 보편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부가가치세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복지는 기본적으로 저소득층의 재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넓으면 얇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따라서 복지는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선별적’이어야 한다. 복지는 잠시 소나기를 피하는 처소여야 한다. 소나기를 피한 나그네는 길을 떠나야 한다. 복지가 안주하는 보금자리여서는 안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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