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마네 홀릭'… 초상화·검은 미학에 빠지다

입력 2013-01-29 17:00   수정 2013-01-30 00:19

WORLD ART - 로열 아카데미 미술관 '마네'展

영국 최초 회고전…54점 선봬…관람객 몰려 밤 11시까지 연장




‘파리에 호퍼가 있다면 런던에는 마네가 있다.’

최근 파리 그랑팔레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현대작가 에드워드 호퍼 전시에 관객이 구름처럼 몰리면서 연장 전시에 돌입한 가운데 런던에서도 메가톤급 블록버스터 전시가 열리고 있어 화제다. 지난 토요일 로열 아카데미 미술관에서 개막해 오는 4월14일까지 계속되는 ‘마네:삶을 그리다’전이다.

전시회 개막 나흘 전인 22일 주최 측은 매주 금·토요일 밤 11까지 전시를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전 예약자 수가 엄청나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서다. 미술관 홈페이지에는 붉은 글자로 ‘사전 예약을 강력히 권한다’는 문구를 올려놓았을 정도다.

런던의 이런 과열 양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작가의 무게감을 들 수 있다.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인상주의자들의 대부로서 전통적인 회화의 원리를 혁신한 최초의 근대작가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법 면의 새로운 시도들은 당대 화단에 충격파를 던졌다. 전통회화에서 터부시됐던 검정색 윤곽선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형태를 얼룩처럼 대충 얼버무려 표현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내달린 붓 터치로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한 점도 두드러진다. 세부 묘사를 억제하고 검정색으로 얼룩진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1872)과 ‘튀일리 정원의 음악회’(1862)는 그 단적인 예일 뿐이다.

마네는 새로운 기법으로 근대 대도시 부르주아 사회의 일상적 풍경을 담담히 그려나갔다. 전시를 기획한 매리 앤 스티븐스 로열 아카데미 미술관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를 “마네 초상화에 보이는 기법상의 혁신을 살필 수 있음은 물론 그가 모델들을 통해 19세기 부르주아 사회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전시가 주목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영국에서 처음 열리는 마네 회고전이자 세계 최초의 마네 초상화전이라는 점이다. 마네 작품은 세계 각지에 소량으로 분산 소장돼 있어 한자리에 모으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54점의 초상화는 모두 30여개국 미술관·박물관 및 개인소장자로부터 빌린 것이다. 일본에서도 4점을 빌렸다. 유럽 대륙과는 달리 유독 초상화의 전통이 강한 영국의 특수성도 이번 전시가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주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전시의 운영을 싸고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미술관 측이 3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정상가의 2배(30파운드)인 프리미엄 티켓 소지자만 입장시킬 계획이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부자들을 위한 전시냐며 주최 측의 장삿속을 꼬집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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